소개글
김시습의 사상, 생애, 금오신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목차
1. 들어가며
2. 김시습 생애
3. 사상
3.1 금오신화속의 사상
4. 금오신화
4.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4.2.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4.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4.4.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4.5.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 나오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항상 최초, 처음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에서 커다란 상징을 나타낸다. 인간의 삶에서 씨앗에서 박차고 나오는 싹은 처음에는 고안자에게 기쁨과 성취를 주며, 점점 나아가서는 주변인물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서는 온 세상에 뿌리를 두는 것 같이 나라와 세계에 변화를 이룬다. 그 중에서 인간의 마음에 뿌리를 두는 문학이라면 더욱 감정적으로 변화가 클 것이다. 문학 중 가장 길이로 긴 소설은 「묵자」에서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로 파악되었다. 시대가 흘러 소설은 작가의 사상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산문으로 되었지만, 항상 소설에는 인간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었다.
소설은 신소설이 생기고 나서 초창기부터 1906년 전까지의 소설을 고전소설이라고 일컬었다. 그 중 인간성을 긍정하고 현실 속에서 제도, 인습, 인간의 운명 등 인간이 어찌하기 어려운 것과 대결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금오신화」는 최초의 한자소설이며, 가장 형식적으로 자리 잡은 전기소설이다. 그런 최초에서 어떤 많은 의미를 피워내어 지금 우리들에게 전해졌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2.김시습 생애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다. 1437년(세종 19) 3살 때부터 외조부로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시를 지을 줄 아는 천재였다. 정속(正俗), 유학자설(幼學字說), 소학(小學)을 배운 후 5세 때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았다. 그의 이름 시습(時習)은 한림학사 최치운(崔致雲)이 지어 주었다고 하는데, 공자의 유명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呼)’에서 따온 글자라고 하였다. 소문은 재상 허주에게도 들리고 허조와 도승지 박이창의 시험에서 <三角山詩>등을 지어 세종이 나이가 들어 학문이 이루어지면 불러다 크게 쓰겠노라고 약속하며, 상을 주기도 하였다. 5세인 1439년(세종 21)에는 이웃집에 살고 있던 예문관 수찬(修撰) 이계전(李季甸)으로부터 중용과 대학을 배웠고, ......<중 략>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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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금오신화, 푸른생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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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현외, 민족문화자료총서, 전기소설 :교감본 한국한문소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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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역사문화연구원, <인물사-김시습>
한국고전 번역원,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인물연표(人物年表) 김시습>
한국고전소설편찬위원회, 한국고전소설론, 새문사, 2012
한국민족대백과사전, <김시습> <금오신화>,<취유부벽정기>,<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기일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