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항쟁에 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6.07.30
- 최종 저작일
-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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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몽항쟁에 관한 고찰 리포트 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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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반도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견뎌 내왔다.
고구려의 수·당 전쟁, 신라의 여당 전쟁, 고려의 거란 3차 침입, 여진의 침입, 대몽항쟁, 조선의 임진왜란, 병자호란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우리 민족은 일치단결하여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워왔으며, 교과서에서도 외세의 침략 부분을 따로 분류 해놓을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쾌거를 이룬 항쟁이라면, 단연 13세기 최강이라 불리던 몽골족에 맞서 싸운 대몽항쟁일 것이다.
13세기 초, 오랫동안 부족 단위로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이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면서 동북아 정세가 급격히 변하였다. 몽골이 금을 공격하고, 북중국을 점령하자, 고려와 몽골의 접촉도 시작되었다.
고려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일삼던 몽골은, 고려를 방문했던 몽골 사신이 귀국길에 피살된 사건을 구실로 군대를 이끌고 침략하였다.
이로부터 고려는 1231년부터 1270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몽골과 전쟁을 벌였다. 당시 집권 중이었던 최 씨 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 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은 끝났다.
몽골은 고려를 완전히 정복하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포기하고, 고려의 주권과 고유한 풍속을 인정하였다. 이는 고려의 끈질긴 저항이 안겨준 결과였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에 기록되어있는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자주성 수호를 위해 싸웠다는 대몽항쟁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에 기록된 것과는 달리 '대몽항쟁'을 단순히 자주성 수호를 위해 싸운 항쟁으로 보기에는 부정적인 부분이 많다.
제일 먼저 조명해야 할 건 수뇌부의 태도다. 당시 대몽항쟁을 주도한 독재자 '최우'는 몽골이 침략해오자, 독단으로 강화천도를 단행하게 된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당시 상황이 자세히 묘사 되어있는데“왕이 개경(開京)을 출발하여 승천부(昇天府)에서 머무르고 병술에 강화도의 객관에 입어(入御)하였다.
참고 자료
고려사절요
한국고전 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김종서 저 / 민족문화추진회 - 고려사절요
장동익 저 / 경인문화사 - 고려사세가초기편보유 1 / 2
동국이상후국집 / 민족문화추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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