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 최초 등록일
- 2016.08.02
- 최종 저작일
- 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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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에리히 프롬의 생애
2.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구성과 내용
3. 에리히 프롬에 대한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에리히 프롬의 생애
에리히 프롬은 (Fromm, Erich, 1900~1980) 독일 태생의 미국 정신분석학자·사회철학자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실한 유대인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러한 가정배경의 영향 탓에 소년시절 구약성서의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등의 예언서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18년 프랑크푸르트대학에 입학하여 하이델베르크와 뮌헨대학에서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깊이 탐구했으며 문화의 병폐를 고치는데 정신분석학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균형 잡힌 건전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뮌헨 대학교와 베를린의 정신분석연구소에서 한스 작스로부터 정신분석을 공부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가 무의식적 충동을 강조함으로써 인간 심리에 대한 사회적 요소의 역할을 경시하는 태도에 반대하여 개인의 인성을 생물학적 조건뿐만 아니라 문화의 산물로 규정했다. 1926년 환자에게 직접 정신분석요법을 실시하였다. 그는 훗날 환자와의 이 접촉은 자기의 사변적 연구에 크나큰 자극을 주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같은 해 6월 16일에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정산과를 전공한 의사 프리더 프롬 라이히만과 결혼했다.
1929년 청년시절부터 감회를 받고 있던 N.A. 노벨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계 지식인 클럽에 가담하여 마틴 부버, L. 로웬달 등과 함께 활동을 하였으며 라이히만과 공동으로 <정신분석학적 운동론>을 《정신분석학지》제3권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1932년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의 방법과 과제>를 발표하였고, H. 마르쿠제, T.W. 아도르노, M. 호르크하이머 등과 함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핵심멤버가 되었다. 1933년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으로 건너가서 시카고 정신분석 연구소에서 강의를 하였다. 나치 치하의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할 즈음에는 이미 정신분석학자로서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미국에서는 정통 프로이트 학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에리히 프롬 지음, 장경룡 옮김,《자유에서의 도피》, 혜원출판사, 2001.
로런스 프리드먼 저, 김비 역,《에리히 프롬 평전》, 글항아리, 2016.
박홍규 지음, 《우리는 사랑 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 필맥, 2004.
박찬구 지음,《에리히 프롬과의 대화》, 철학과현실사, 2001.
틈틈이 기획팀 엮음,《세계 명저 콤팩트》, 명진출판,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