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골품제의 기원과 발전 과정 - 신라사에서의 골품제의 중요성과 남는 의문을 중심으로 -
- 최초 등록일
- 2016.08.31
- 최종 저작일
- 2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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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신라 골품제의 기원과 변화
1. 성립배경 및 시기
2. 골품구조의 변화 - 得難
Ⅱ 신라 골품제의 특징
1. 王京人 / 地方民의 구별
Ⅲ. 신라 골품제 연구의 중요성과 의문
본문내용
Ⅲ. 신라 골품제 연구의 중요성과 의문
Ⅰ. 신라 골품제의 기원과 변화
흔히 신라 사회를 ‘骨品社會(또는 骨品制社會)’로 일컫는다. 이는 신라의 골품제가 동아시아의 여타 국가에서 발견할 수 없는 무척이나 독특한 형태의 사회구조 혹은 신분체제였기 때문이다. 골품제는 태어나면서 정해진 신분에 따라, 정치적 활동은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도 엄격히 규제하는 특이한 성격의 신분제였다. 본 보고서에서는 신라 골품제의 기원과 시기별(시대별) 변화과정 등에 대해 살펴보고 신라 사회에서의 독특한 제도인 골품제 연구의 중요성과 남는 의문점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성립 배경 및 시기
골품제도는 신라의 前身이라고 할 수 있는 斯盧國이 발전하면서 당시 지배층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정복전쟁으로 발생한 피점령인을 보다 효율적으로 체제 내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마련된 신분제도이다. 사로국 발전 당시의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3성 집단(朴?昔?金) 등은 일반민(하위 두품)과 구별되는 특권층으로서 존재하게 되었으며, 신라 왕실은 이후 사상적?종교적 차원의 차별을 넘어 制度的 측면에서의 差別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사로국이 발전하여 신라로 변모하고 결국엔 삼한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와 모습을 보이게 된다 골품제가 하나의 제도로서 어느 시기에 완비된 모습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은 그 기준을 어떻게 삼을 것인가 등에 따라 여전히 학계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8계층(성골, 진골, 6~1두품)이 함께 존재한 때를 기준으로 삼아, 골품제의 성립 시점을 논해 보기로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골품제가 성립된 시기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다양하다. 하지만 6세기 법흥왕 대(520년) 律令이 반포되는 등 신라의 각종 제도가 정비됨을 살펴볼 때, 이 시기에 7계층으로 골품제가 성립되고, 이후 7세기 진평왕 대에 이르러 진평왕계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성골과 진골이 분화된 8계층 골품제가 완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은 신라의 골품제가 어느 특정한 시기에 제도로서 확립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배체제를 정비해가는 과정에서 점차적인 단계를 밟아 성립되어 왔다는 인식에 근간을 두고 있다.
참고 자료
하일식, 2006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 (서울: 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