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생애와 시분석
- 최초 등록일
- 2016.09.13
- 최종 저작일
- 2016.05
- 1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삶
김광균은 1914년 1월 19일(음력 1913년 12월 23일)생으로 그를 연구한 책과 포털사이트에 기록되어 있지만 뒤에 나오는 가신 누님이 중외일보에 1926.12.24일 발표되었고, 14세 때 적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1912년 출생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김광균은 경기도 개성에서 아버지 김창훈과 어머니 한순복 사이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0년에 개성시에 있는 원정소학교에 입학한다. 1924년 김광균이 열두살 때 그의 아버지는 개성 남대문 네거리 모퉁이에서 포목 도매상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로 심부름을 보낸 수점원이 막차에도 오지 않자 밤늦도록 걱정하시다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금가>는 1986년 범양사출판부에서 출간된 제4시집 『추풍귀우』에 실려있고, <금가>의 <동부 나까줄의황혼>부를 참조. 그때 그의 아버지는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 계시다가 12일 만에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는 48세였다. 불의에 아버지와 사별한 김광균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함께 채권단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게 된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자 곧바로 아버지의 친구인 차씨와 약속했던 자녀들의 혼사가 무효화되는가 하면, 채권자들이 몰려들어 상점에 있는 물건과 금전은 물론, 집조차 차압해 가서 그들 가족은 셋집으로 옮겨 살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채권단은 자식이 후일 자라서 아버지의 부채를 갚겠다는 문서를 써내라고 하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어린 김광균을 데리고 채권단에게 가서 그것만은 안 된다고 추운 겨울 날 닷새를 애원하여 부친의 부채를 자식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불망기’를 써서 받아 내었다. 이 불망기를 김광균은 평생을 액자에 넣어 간직하고 살았다고 한다. <금가>의 <개성역>부를 참조 이후 김광균이 성장할 때까지 어머니께서 생계수단으로 삼포를 경영하였다. 김광균의 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부유한 편에 속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조남익, 『한국 현대시 해설』,미래문화사
박민영, 「김광균 시 연구」,돈암어문학회, 2010.12,
유시욱, 『한국 현대 시 백년, 현대 시인 백인』,서강대학교 출판부, 2008
김학동 외, 『김광균연구』,국학자료원, 2002년
김진희, 「1930년대 김광균의 낭만과 모던」, 한국시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2014.5,
이재오, 「김광균 시의 주제 체계에 관한 연구」,『30년대의 모더니즘』(범양사,1978)
김광균, 「30년대의 화가와 시인들」,『김광균문집 와우산』(범양사출판부,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