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개요
3. 연혁
4. 소쇄원의 조영요소
5. 소쇄원의 의의
6. 참고문헌
본문내용
소쇄원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123번지에 소재하며 남쪽으로는 무등산을 바라보고 장원봉과 까치봉을 잇는 산줄기를 뒤에 업고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대나무 숲 사이를 통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쇄원은 안으로 들어서면 짚으로 이은 정자인 대봉대가 있고 왼쪽 계곡 건너편에 광풍각이 그 뒤로 제월당이 있다.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소쇄원 48영」에 비추어 보면 식생은 대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복숭아나무, 오동나무, 버드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사계화, 치자나무와 같은 목(木)과 국화, 연꽃 순채, 파초와 같은 초(草)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탄 후 다시 복원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소쇄원은 자연 자체를 뜰로 삼으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인공을 가해 건축물들이 전체 경관의 일부로 녹아 있게 한 조선시대의 정원건축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소쇄원의 瀟는 ‘빗소리 소’ 혹은 ‘물 맑고 깊을 소’이고 灑는 쇄, 새, 혹은 사 라고 읽을 수 있는데 ‘물 뿌릴 쇄’나 ‘깨끗할 쇄’라는 음 뜻을 갖는다. ‘소쇄’란 공덕장의 북산이문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말이다. 결국 소쇄원의 이름을 풀어쓴다면 ‘물 맑고 시원하며 깨끗한 원림’이다. 그러나 소쇄의 뜻은 비단 자연경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김춘택의 시 중 “소쇄는 산수가 소쇄하단 말이 아니니, 모름지기 소쇄한 마음을 알아야 한다”라는 것과 윤인서의 “더러운 옷 번거로운 마음을 소쇄하게 갖이려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소쇄원은 마음과 기운이 깊고 깨끗한 것을 추구하려는 양상보의 의지가 형상화 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쇄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숭상하는 전통의 조선시대 정원으로 이어졌다.
<중 략>
소쇄원이 지어진 호남지방은 조선 건국 시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또는 건국기의 정쟁에 연루된 사대부들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기 위하여 내려온 지역이다. 중앙과 멀어 정치적 여파가 적고 기후가 좋은 호남지역은 그들이 은일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참고 자료
허균,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정원>, 다른세상, 2002
정재훈, <소쇄원>, 대원사 2000
천득염, <한국의 명원 소쇄원>, 발언, 1999
맹영임, <청소년문화유산 사랑여행 21>, 한국청소년개발원, 1999
정기호 , <소쇄원, 긴 담에 걸린 노래> 태림문화사, 1998
안장리, <(10가지 주제로 풀어본) 우리경관 우리문학> 평민사, 2000
이병훈, <문화 속에 미래가 있다 : 행정 현장에서 바라본 문화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2001
조요한 <한국미의 조명> 열화당,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