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 '월지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16.10.30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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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1. 월지에 대한 소개
2. 월지의 명칭
3. 기능
Ⅱ. 월지의 조경적 특징
1. 고구려, 백제, 중국의 양식을 재창조하여 조성
2. 세 개의 섬에 담긴 비밀
3. 개방성과 폐쇄성의 미학
4. 내륙에 조성한 또 하나 의 동해
5. 배수시설
Ⅲ. 느낀점
본문내용
∎ 개요
1. 월지에 대한 소개
월지는 통일신라시대 신라 궁궐의 후원 연못으로 백제 사비성의 궁낭지, 경복궁의 경회루 연못, 향원정 연못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덕왕 19년(760)에는 못을 팠다는 기록이 있으며, 임해전에서 군신에게 연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효소왕 6년(697)과 혜공왕 5년(769)에 있다. 또 소성왕 2년(800)에 임해문과 인화문이 파손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연못은 동서 200m, 남북180m로 서남쪽은 직선형인데 반해 북동쪽은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으며 무산12봉을 상징하는 언덕을 조성해 놓고 있다. 또한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삼신도를 본떠서 만든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연못 안에 배치되어 있다. 월지는 신라가 멸망한 이후 동궐 건물들의 잔해들을 연못 속에 버리고 폐허가 되어 연못에는 갈대밭만 남아 있어 기러기와 오리가 노는 곳이라 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안압지라 불렀다고 한다.
2. 월지의 명칭 – 월지(月池), 안압지(雁鴨池), 임해전 원지(臨海殿園地)
안압지(본래는 기러기와 오리들이 노니는 연못), 임해전 원지(임해전에 속해 있는 연못)라고도 불렸으나, 현재는 『삼국사기』등의 기록에서 유추하여 월지(달이 머무는 연못)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3. 기능
⑴ 정적기능 – 연회(공적기능), 관상 (연꽃식재)
⑵ 동적기능 – 뱃놀이
∎ 월지의 조경적 특징
1. 고구려, 백제, 중국의 양식을 재창조하여 조성
문무왕은 통일 정부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단행하였는데 백제나 고구려로부터 포로로 데려온 기술자들과 인력들을 활용하였다고 보여진다. 그 이유는 발달된 고구려의 토목기술과 백제의 조경사상이 월지에 복합적으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