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 영화 초기 단계에 있었던 변사라는 직업과 판소리의 창자를 비교 분석해서
당시 변사의 인기 요인을 분석해보았습니다.
목차
1. 서론
2. 서사의 해설과 공연자의 개입
3. 대중성의 확보와 전문직업적 성격
4. 공연자와 관객의 소통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변사는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 초기 단계에 큰 역할을 했던 직업이다. 당시의 영화 제작 기술로는 소리를 녹음할 수 없었다. 당시는 문맹률이 높았고 따라서 글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자막으로 영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설명해주는 역할은 필수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변사라는 직업이다.
변사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무성영화의 대사 연기를 지어내는 성우인 동시에 영화를 해설하는 내레이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변사는 이처럼 영화자체에 속박된 수동적인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영화를 통해 상영되는 낯선 문화나 조형물을 설명하기도 했고, 영화 해설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렇듯 변사라는 역할은 무성 영화의 내레이터에 그치지 않고 관객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지점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변사는 공연자, 즉 performer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누가 변사를 맡는지의 여부는 관객의 영화 선택을 좌우하기도 했다. 서양 문화에 익숙한 최초의 변사 우정식 뿐 아니라 김덕경, 서상호 등은 당시 극장의 인기 변사였다.
변사가 생겨나고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영향이 컸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일본의 전통극 ‘분라쿠’의 ‘다유’와 또 다른 전통 연희 ‘가부키’의 ‘다케모토’가 있다. 일제 치하에서 새로운 양식의 예술이 일본의 문화를 통해 조선에 빠르게 수용되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한 분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화가 쉽게 향유될 수 있는 대중 예술이 된 것은 우리의 전통 문화와의 접점이 크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18세기에 독자적인 공연예술로 정립되어 발전한 ‘판소리’가 그러한 전통 문화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판소리’의 ‘창자’는 변사와 같이 서사를 설명해주는 역할이면서, 이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확장해갔다. 이에 판소리의 창자와 무성영화의 변사가 가지는 접점으로부터 조선의 공연 예술이 변사의 인기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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