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 최초 등록일
- 2016.11.15
- 최종 저작일
- 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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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1894년 농민운동의 배경과 전개
Ⅰ-1. 열강의 경제 침탈과 민중들의 사회의식 성장
Ⅰ-2. 동학 교세의 확장과 교조 신원 운동
Ⅰ-3. 제 1기, 제 2기, 제 3기, 제 4기
Ⅱ. 조선 왕조 체제 내의 개혁을 주장한 농민군
Ⅲ. 새 왕조 건설을 지향한 농민군
Ⅳ. 결론 및 한계점
본문내용
Ⅰ. 1984년 농민운동의 배경과 전개
Ⅰ-1. 열강의 경제 침탈과 민중들의 사회의식 성장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로 문호가 개방되자,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심화되었다. 일본은 영국산 면직물과 서양의 생활용품 등을 수입하여 판매하고 곡물 등을 무제한으로 반출해갔다. 이에 따라 조선의 농천 가내 수공업 기반은 붕괴되었고 소농민・소상인・빈민층의 몰락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개항 후 곡식이 나라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면제품을 비롯한 외국 물품이 쏟아져 들어온 것은 부유층에게 큰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됐지만, 평범한 백성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한, 문호 개방 이후 각종 개화 사업으로 재정 지출이 크게 늘어나 국가 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인 위기 속에서 농촌 지식인과 농민층의 정치・사회적 비판의식이 성장하였고, 1890년대에 들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일대를 중심으로 농민 봉기가 잇따라 일어났다.
Ⅰ-2. 동학 교세의 확장과 교조 신원 운동
19세기의 조선 사회는 세도 정치의 폐해, 탐관오리의 수탈과 삼정의 문란으로 위기에 놓여있었다. 여기에 서양 이양선의 통상강요와 서양 선교사의 활동으로 천주교 교세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주의 몰락 양반 출신인 최제우는 1860년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다. 최제우는 ‘한울님을 내 마음 속에 모신다.’라는 ‘시천주’(侍天主)와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그리고 태평성세의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염원하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교리와 함께 부적과 주문 등의 대중친화적 방법을 앞세워 포교 활동을 벌였다. 이에 호응하여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농촌 지식인들과 농민들이 대거 동학에 입교하였고 경상도뿐만 아니라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까지 교세가 확장되었다.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자, 정부는 동학 교조 최제우에게 백성을 현혹시켜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목을 씌워 1864년 1월에 처형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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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욱, 『교과서보다 쉬운 독학 국사』, 일빛출판부, 2004
김이식, 『핵심 한국사 100선』, 향출판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