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6.11.21
- 최종 저작일
- 2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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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시대(朝鮮時代) 도자기(陶瓷器)
조선시대 도자기는 크게 분청사기(粉靑沙器)와 백자(白磁)로 구분된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퇴락한 청자를 모태로 하여 일신되었으나, 16세기 후반경에는 분청사기가 쇠퇴하면서 백자만 번창하여 이후 조선시대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외에도 청자·흑유·철채·철유 등이 있다.
백자는 이미 통일말~고려초부터 만들어졌으나 고려백자는 유약이 떨어지기 쉬운 연질이었으며, 청자가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왕조 초기는 우리나라 도자사의 일대 전환기로서, 도자기의 제작 중심이 청자에서 백자로 바뀌게 된다. 이 시기에는 이전의 연질 백자도 경상도 일원에서 만들어지지만, 중국에서 등장한 치밀질 백자인 소위 추부백자의 영향으로 치밀질백자가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확산된다.
전기 백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상품(上品)의 경우 대접·접시 및 병 등의 입술이고 바깥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항아리는 주둥이가 밖으로 말린 형태와 안으로 숙여 세워진 형태가 있다. 이들은 모두 동체의 선이 유연하고 유색은 담청을 머금은 백색으로 빙렬(氷裂)이 없으며, 두텁고 깊은 맛이 있다. 굽은 안정되고 단아하게 처리하였으며, 가는 모래를 받쳐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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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고려청자(高麗靑瓷)라는 용어는 고려시대 성행한 청자의 예술적 가치가 다른 나라의 청자와 비교해볼 때 뚜렷이 구별될 만큼 독창적이고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 데서 비롯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청자가 신라 하대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두루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고려도자(高麗陶瓷) 또는 고려청자라는 말은 점차 청자라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만든 형태 위에 철분이 1~3% 정도 들어 있는 장석(長石)질 유약을 입혀 1250~1300도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내어 자화(磁化)한 자기이다. 이 때 유약은 색의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翡翠色)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胎土)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되며, 고려사람들은 이를 비색(翡色)이라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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