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 베이징 뒷골목을 걷다
- 최초 등록일
- 2016.12.07
- 최종 저작일
-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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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프롤로그
2. 라오서 : 베이징을 사랑한 작가
3. 캉유웨이와 량치차오 : 새로운 역사는 없다.
4. 차이위안페이 : 근대 교육의 선구자
5. 리다자오 ; 중국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6. 루쉰과 저우쭤런 : 베이징에서의 세월들
7. 에드거 스노 : 서행만리
8. 신채호 : 울분 속에 살다 간 우국지사
9. 주요섭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작자가 본 베이징
10. 에필로그 : 낡은 베이징, 새로운 베이징
11. 감상문
본문내용
① 프롤로그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적극적으로 대외적으로 소통에 나섰고, 오랜 역사가 남긴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발 빠르게 관광 대국이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으로 관광대국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호텔이 부족하여 베이징 당국은 오래된 사원을 개조하여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현재는 베이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로 바뀌었지만 이 오래된 사원은 그 시대에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의 집으로 사용되었다. 청 말 시대에 시 태후의 총애를 받았던 환관 리롄잉의 저택에 딸린 정원이 엇고 양무운동 당시 큰돈을 벌어 거부가 된 성쉬안화이가 이곳에 살았다.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해방 후에는 중국 정부에 귀속되어 공산당 고위 인사들의 저택이 되었다. 초기에 중국 공산당 원로 등비우가 이 집에 거주했고 이후 문화대혁명 대 권세를 누렸던 캉성이 살았다. 극좌 성향을 띄었던 캉성은 1950년대 후반 병으로 장기 요양을 하였으나 문화대혁명이 완료되기 직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캉성은 많은 사람들을 박해하여 악명을 떨쳤던 사인방과 함께 재평가 되어 모든 공적이 취소돼 바바오산 혁명묘지에서 이장되었다. 다른 명사들의 저택은 그들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바뀐 데 반해 일개 호텔로 개조되었다.
중국 수도 베이징시를 동서로 관통하는 현재는 백리 창안졔로 불리는 이 번화한 거리를 걷다보면 주위 풍광과 다른 중국 전통 건물 한 채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건물에 다가서면 대문 앞 벽에 ‘우겸사’라는 석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겸사라는 석판을 보고 사람들은 사당으로 생각하고 발길을 돌린다. 우겸사의 우겸은 명나라 때 유명한 관료의 이름이다. 우겸사는 우겸, 즉 위쳰을 기리는 사당이다. 명 대 중엽인 1435년 정통제 영종이 아홉 살의 나이로 황제 자리에 올라다. 어린 황제가 등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난이 일어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