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광해군을 선택한 이유
2. 인간 이혼에 대한 이해
3. 광해에 대한 자료 수집과 해석
4. 내가 구성한 의미
5. 정리
본문내용
1. 광해군을 선택한 이유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참으로도 많다. 가장 흔히 보이는 단어가 아마 폭군, 혼군 그리고 패군일 것이다.
폭군이 사납고 악한 임금이라면, 혼군은 어리석고 용렬한 왕, 그리고 패군은 도리에 어긋나고 포악한 임금이라는 의미이다.
모두 다른 단어를 쓰고 있지만 가리키는 바는 하나이다.
그가 마땅히 물러나야 할 만큼 포악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일각에서의 반응은 어떨까?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실리외교’와 ‘중립외교’를 통해 명과 청,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한 왕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평가가 극단적인 것일까? 또한 그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에서 그 어떤 왕도 이토록 평가가 극단적이며,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훗날 그에 대한 평이 이렇게 뒤집히는 경우는 없었다.
교육 현장에서도 1,000명의 역사 선생님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역사 이야기’의 1위가 광해군이라고 나왔다.
나는 무엇이 그를 이토록 특별하고 흥미롭게 만드는지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조선에는 묘호를 갖지 못했던 군주가 딱 3명 있었다.
바로 노산군, 연산군, 광해군이다. 이것도 단 3명이라 희소한데, 노산군은 후에 숙종에 의해 단종으로 복위가 된다.
즉, 왕으로 즉위했음에도 마지막까지 군으로 강등된 사람은 단 2명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연산군이 논란의 여지가 없이 폭군으로 평가된 것과는 다르게 광해군은 그가 폭군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마 이러한 의문과 논란이 그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듯하다.
또한, 그의 재조명된 평가는 문화·예술가들에게 색다른 영감을 주며 현대의 문화·예술에 다양한 모티프가 되었다.
실례로 2012년의 ‘광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현재 2015년의 ‘화정’이라는 드라마도 참고해 볼 만하다.
현대에서 보는 광해군에 대한 시각을 잘 나타낸 드라마로, 광해군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선조에 의해 세자로 책봉되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전란이 끝난 후 선조에게 철저히 배반당하는 비운의 왕으로 그리고 있다.
참고 자료
한명기, 광해군-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역사비평사 ,2000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99
민족문화추진회, 광해군일기.
한명기, 광해군. 폭군인가 현군인가, 한국역사연구회 webzin.01창간호
한명기, 광해군, 역사비평사, 2000
백지원, 백성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주)진명출판사, 2009,
김현묵, 물구나무서서 보는 한국 역사, 녹진, 1993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 사림정치와 당쟁(선조조 ~ 현종조), 동방미디어, 2001
한명기, 광해군(光海君) : 외교의 '빛'과 내정의 '그림자‘, 한국사시민강좌, 일조각, 2002
KBS 역사스페셜 - 조선 최대의 음모, 광해군은 왜 쫓겨났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4&contents_id=75356
네이버 지식백과 - 광해군 검색
한명기,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역사비평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