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민족 분쟁 분석: 2차 인티파다 운동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7.05.22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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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티파다(Intifada)’는 아랍어로 봉기, 반란, 각성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동시에 아랍-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이스라엘 독립 투쟁을 칭하는 단어이다. 인티파다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영토를 몰수당하고 이스라엘 점령지 밖으로 쫓겨난 아랍-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가지고 있던 아랍-이스라엘인들이며, 현재까지 인티파다 운동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우선, 두 민족의 분쟁은 ‘민족과 폭력을 연결하는 네 가지 메커니즘’ 중 영토 회복 운동(Irredentism)과 분리 운동(Secession)이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아랍-팔레스타인인들이 소유했으나 현재는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이 점령하고 있는 땅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과, 이스라엘의 존재를 용인하며 이스라엘로부터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모두 분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를 지지하는 단체에는 하마스(HAMAS) 등이 있으며, 후자를 지지하는 단체에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등이 있다.
두 민족에게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상징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를 모두 가진 땅이었다. 팔레스타인(그 중에서도 예루살렘) 땅은 이슬람교, 유태교 모두에게 성스러운 땅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악사 사원이 있는 산은 유태교인들에게는 템플 마운트로 3000여년 전 ‘솔로몬 왕이 세운 성스러운 곳’이었고, 아랍 무슬림들에게는 하람 에스-샤리프, 즉 ‘무하마드가 승천한 곳’이었기 때문에 두 종교 모두에게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유태인 민족주의자들(특히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이었으며, 오래 전 유태인들이 세계로 흩어진 이후 처음으로 민족 국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기회의 땅이었다. 또한 아랍-팔레스타인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은 맥마흔 선언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약속받은 독립된 영토였으며, 이제까지 그들이 살아온 터전이었다. 이렇듯 두 민족에게 팔레스타인 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땅이었고, 두 민족과 영토의 결합은 폭발적인 분쟁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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