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개항과 근대화에 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7.06.29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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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18세기 무렵 한·중·일 3국의 정세
2. 한·중·일의 개항 과정
3. 한·중·일의 근대화 과정
4. 한·중·일의 근대화 결과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한중일 삼국을 둘러싼 역사 분쟁은 그 원인을 개항기 이후 근대화 시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질서에서 지난 18세기부터 시작된 새로운 흐름이 가져다 준 역사적 변화는 현재까지 3국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을 당한 일제 강점기가 우리사회에 미친 해악과는 별개로 우리가 식민지를 경험하게 되었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동북아 삼국의 근대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근대화는 기존의 중화사상을 중심으로 연결되어왔던 동북아의 질서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전통적 질서를 파괴시킨 시대적 변화가 일어난 사건이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포함해서, 서양세력의 침략, 내부적으로 쇄국과 개방 사이에서 3국이 선택한 변화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3국의 선택으로 인한 동북아 질서의 변화와 사회 발전 양상 등을 통해서 현재의 국제 질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근대화를 이룬 한중일의 과정을 184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그로 인한 3국의 변화된 모습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18세기 무렵 한·중·일 3국의 정세
먼저, 19세기 중반 무렵 조선과 청나라, 일본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해 보도록 하겠다. 조선의 경우에는 이미 19세기에 진입하면서 조선사회의 기반이었던 양반관료체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구조의 해체기를 맞이했다. 영정조의 탕평정책 이후로 조정에서는 세도가문의 권력이 정점에 달해서, 삼정이 문란해지면서 이에 대한 개혁 요구가 평민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였다.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등이 외척 가문으로 성장하면서 국정의 전반을 좌우하는 세도정치의 시대로써, 조선을 지탱하던 과거제도의 부정이 심화되고, 매관매직이 일반화되어서 인사에 대한 불만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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