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발해
- 최초 등록일
- 2017.08.03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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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대외교류
신라가 통일 이후 당 및 서역, 일본 등과도 교류했음은 분묘에 부장된 도용과 괘릉의 석인상 같은 이 시기의 각종 유적과 유뮬에서 알 수 있다. 또 산국사기 잡지의 기록은 외국에서 각종 물품을 수입했음을 말해준다.
8세기 이후 활발해진 당과의 교류에서 신라는 당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왕경의 시가지 계획은 궁성남면 개념을 수용했고, 방은 16개의 소구로 분할하는 등 당의 장안성을 참고하였다. 당에서 수입한 대료적 물자는 도자기로서 안압지와 황룡사지, 부소산성, 미륵사지, 왕경지구의 건물지, 완도 청해진, 화장묘의 장고기 등 왕경과 지방의 사찰이나 성터에서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었다. 도자기 수입은 9세기대에 집중되어, 이시기 상휴층의 생활용기로 사용된 듯하다.
당과의 교류는 사리용기의 형태나 장식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간지를 수용하여 분묘를 12지상으로 장식하거나 시간이나 출생을 알려주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당과의 교류는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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