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상가들의 이상과 현실
- 최초 등록일
- 2017.08.24
- 최종 저작일
-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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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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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노과학, 미적분, 외국어, 교직.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수업 외에도 수많은 분야의 교육을 언제나 어디서나 제공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교육은 누구에게나 손쉽게 접해지는 것이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강의나 수업도 시공간 제약 없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이 항상 이래왔던 것일까? 언제나 평등하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원하는 만큼 자신의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던가? 본인은 교육철학 및 역사를 듣기 전까지는 이러한 질문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생각조차도 해 본적이 없다. 아마 청소년기를 외국에서 보낸 터라 한국 교육의 역사는커녕 전반적인 한국사에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수업을 수강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이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알고 싶어졌고 지금 본인 자신이 누리고 있는 교육의 기회가 그 당시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또한 교육이 이렇게 발달하기까지 누가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도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본인은 시대별로 한국을 대표하는 교육 사상가들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이 글에서는 각 교육 사상가들의 생애와 교육사상들을 다룰 것이며, 고대사회, 즉 삼국, 통일신라 시대의 교육에서는 원효대사, 고려시대 교육에서는 지눌, 조선시대의 교육에서는 율곡 이이, 개화기 교육에서는 유길준, 그리고 일제 감정기 교육에서는 안창호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먼저, 삼국과 통일신라 시대를 포함한 고대사회의 교육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원효대사(617~686)의 생애와 교육사상에 대해 살필 것이다. 원효는 신라 진평왕 39년에 아량군 불지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약 10세)에 출가하여 여러 스승에게 학업을 배웠으며. 33세가 되던 해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당나라로 향하는 도중 동굴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기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어 다시 신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오직 불교의 연구와 저술 그리고 대중교화에 몰두하였다. 또한 원효는 파계하여 요석공주와 설총을 낳았으며, 속세로 돌아와 중생을 교화하는데 힘썼다.
참고 자료
조경원 외 4인, 『교육철학 및 교육사』, 교육과학사, 2014
이효령, 한국사상문화학회, 『원효의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 (1)』, 한국사상과 문화. Vol. 3 No. 0 117-125p, 1999
네이버 케스트 : 유길준(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4906), 2014년 11월 28일.
원효학연구원(http://www.wonhyo.or.kr/biography.html), 2014년 11월 26일.
율곡 이이(http://www.who-who.net/ii/ii1st.htm), 2014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