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선왕의 개혁정치
- 최초 등록일
- 2017.09.12
- 최종 저작일
-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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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충렬왕(忠烈王, 1236-1308) 시기의 상황
2.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의 세자시절
3. 충선왕(재위 1298, 1308-1313) 즉위와 개혁 단행
4. 교서 개혁안의 내용
5. 개혁운동 실패 및 강제 퇴위
6. 충선왕 퇴위 후 상황과 복위
본문내용
1. 충렬왕(忠烈王, 1236-1308) 시기의 상황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의 부왕인 충렬왕은 1278년에 국가의 중요한 사건을 결정하는 국왕 직속의 특수조직인 비칙치[필도치] 설치하는 등 국왕측근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왕권 신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재위 중엽 경에는 후기사회를 이끌어갈 지배세력인 세족(勢族)과 권문(權門)이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원 공주의 겁령구(怯怜口)나 응방 등 대원관계의 전개 속에서 비정규적인 길을 통해 권문화한 축들이 중심이 되어 많은 작폐(作弊)가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가고 있었다.
이로써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의 일본 정벌 등으로 무거운 부담을 져야했던 당시 백성들은 지배세력의 불법과 수탈까지 겹쳐 고통이 극에 달하였다.
2. 충선왕(忠宣王, 1275-1325)의 세자시절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1295년(충렬21년) 8월, 세자 장(璋, 충선왕의 이름)은 원에서 귀국하여 국정에 참여하고 다음 달부터는 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청단(聽斷)하게 된다.
참고 자료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
정성희, 『인물로 읽는 고려사』, 청아출판사, 2000
한국인물사연구원, 『이야기 고려왕조실록 하』, 타오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