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 최초 등록일
- 2017.10.18
- 최종 저작일
-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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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공내전의 배경
(1) 종전이후의 중국
(2) 정치협상회의
(3) 결렬
2. 국공내전의 전개
(1) 내전 전반기
(2) 3대전투의 승리와 북경입성
3. 국민당의 패배원인
(1) 내부적 요인
(2) 외부적 요인
4.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1) 내전 후반기
(2) 공산당의 승리원인
(3)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본문내용
1. 국공내전의 배경
(1) 종전이후의 중국
제 2차 세계대전은 반파시즘 제국의 승리로 끝났으며 각국의 정부와 민중은 장래에 대해 밝은 희망을 안고 있었다. 침략전쟁의 원흉이라고 간주되었던 파시즘의 소멸은 바꿔 말하면 전후세계의 평화와 변영을 보장하는 것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항일전쟁에 승리한 중국국민이나 정부도 전후의 중국 재건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임하고 있었다. 침략자 일본을 완전히 패망시켰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각국과의 불평등조약이 철폐되고 중국 자신의 국제적인 지위도 상승되어 국민정부의 미래는 충분히 약속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참승’이라는 말과 같이 8년간의 전화가 국토를 황폐화시키고 사회경제에 손톱자국을 남긴 것도 한편으로 엄연한 현실이었다. 전후 중국의 재건은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에 승리한 중국이 전후 부흥에 거는 희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영토를 회복하여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고, 전쟁 전보다 나은 사회경제적 번영을 실현해 주기를 절실히 원했다. 국민당의 일당독재 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적인 헌정을 실현하리라는 기대 역시 컸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전쟁 이후의 중국에 대한 설계에 몰두하였다. 국민당의 수장인 장개석이 구상하고 있던 전후 중국의 부흥은 ‘중국 고유의 도덕과 기능의 회복’, ‘국민의 건국신념과 결의의 격려’, ‘중국 전성기인 한나라,당나라 규모와 기백 수준으로의 부흥’, 으로서 즉, 유교적인 도덕윤리를 회복하고 국력을 강화하여 세계적인 국가로 다시 도약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삼민주의를 이념으로 하여 국민당이 중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공산당의 수장인 모택동은 전쟁 이후, 각 당파와 무소속의 대표자들을 단결시켜 폭넓은 민주적 기반 위에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여 연합적인 성격의 민주정부를 만든 후 중국의 모든 인민들을 이끌어 하나의 독립된 자유 민주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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