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본토 항공전
- 최초 등록일
- 2017.10.31
- 최종 저작일
-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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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2차대전 초 유럽대륙을 전격전으로 정복한 독일군에 첫 패배를 안겨준 영국본토 항공전의 전개 과정
- 항공전의 시작과 영공군군의 위기
- 런던폭격과 영공군의 기사회생
- 영공군의 승리요인과 독공군의 과오
목차
1. 초기 상황: 바다사자 작전
2. 본토 항공전의 개시와 영공군의 위기
3. 런던 폭격과 영공군의 기사회생
4. 영국의 승리 요인과 독일의 과오
본문내용
<영독 공군력과 항공전 전략 비교>
* 영국의 유기적 본토방어 전략
- 휴 다우딩의 냉철한 효율적 통합 방어전략
*영국 전투기 부문 총사령관 다우딩은 ’30년대 초부터 구축한 레이더망, 통합중앙관제 시스템, 주력 전투기의 낭비적 투입 금지로 방공능력을 극대화
*개전 초 총 500여기의 4개 전투비행단을 영불 및 북부 해변지역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본토영공 수호 외에는 스핏파이어의 투입을 단호하게 막음
*레이더망과 중앙관제시스템의 혁신성을 진작에 알고 실전적 숙련성을 끊임없이 연마해옴
* 독일의 영전투기 소모 전략
- 정보부족에 의한 헤어만 괴링의 허세어린 경적(輕敵)
*독공군 사령부는 레이더의 존재와 영공군의 잔여전력을 과소평가해 자국기 2,200여대로 최소 1대1의 격추 소모전이면 영 방공능력은 고갈되리라 과신
*하지만 강화조약 기대로 한달 여 공격을 미룬 동안 영국은 전투기 월생산량을 독일보다 더 늘린데다 효율적인 방공시스템으로 강력한 방어능력을 보임
<런던폭격 실수로 상황 반전>
* 다잡은 승리기회 날린 독일공군
- 방어한계에 직면한 영국 전투기사령부
*유리한 방어환경에서 2대1 이상의 항공 손실비 속에 선방하던 영공군은 점차 정교해지는 독공군의 군사요충지 폭격능력과 조종사 급감으로 방어한계에 도달
*주요 공군기지와 레이더 시설, 항공기 생산공장 폭격으로까지 밀려오자 8월 말 영공군의 패색이 짙어짐
- 런던 오폭과 영국의 베를린 보복 공습
*히틀러는 영국내 화평파가 강경한 처칠정부를 몰아낼 때까지 영국민을 자극하지 않으려 런던 폭격 금지
*8/24일 독폭격대의 일부가 일기불순으로 방향을 잃고 런던근교에서 헤매다 영전투기의 요격을 받고 황급히 도주 중에 폭탄을 런던 상공에 목표없이 투척
*실질적 피해는 경미했지만, 처칠정부는 이 사건을 영국민의 공포심을 완화하고 항전의지를 미국을 비롯한 대내외에 과시할 계기로 삼기 위해 보복 결의
참고 자료
- 마이클 코다, ‘영국전투’, 열린책들, 2014
- 노나카 이쿠지로, ‘전략의 본질’, 북포스, pp. 116~161, 2011
- 존 키건, ‘2차세계대전사’, 청어람 미디어, pp. 135~152, 2004
- 폴 콜리어 외, ‘제2차 세계대전’, 플래닛미디어, pp. 134~141, 2008
- 남도현, ‘영국 본토 항공전’ 1~9편, 인터넷, 연도 미상
- 베빈 알렉산더, ‘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했는가’, 홍익출판사, pp. 81~91,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