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조선시대의 신분제와 경국대전
3. 16세기 이후 신분제의 변동
4. 맺음말
본문내용
고려 말 신유학의 전래는 당시 사회혼란을 개혁하기 위한 사상으로써 조선시대의 근간이 되었다. 이 신유학 즉 성리학은 원 간섭기의 문란해진 習俗을 바로잡고 규정을 바로 세워 사회질서와 도덕적 윤리를 회복하기 위한 실천이 강조되었다. 성리학을 도통으로 하는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이러한 윤리는 정치사상이자 국가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신분제도의 정비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걸쳐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기존 고려왕조와는 차이점을 보이면서 유교적 이념 질서와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신분이라는 것은 사회 계층적으로 귀천의 등급이자 서열로서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피지배계층을 지배하고 국가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 역할을 하였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에 관한 연구 성과는 많이 축척되었으나 구체적인 신분구조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분분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조선시대를 良賤制 사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과 규제에 대해서는 성종대에 완성된 經國大典에 신분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신분제의 연구와 더불어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신분제도를 파악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자 질서 유지적 측면이 아닌 그 시대의 사회상과 사상, 문화, 이념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는 앞서 언급한 성리학적 통치이념과 세계관에 따라 신분을 세속화하여 왕조를 유지하게 하는 한편 경제, 사회 전반에서 각 신분별로 규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층질서는 각 신분에 따라 유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양인과 노비의 구별이 귀속적인 것이라면 양인 자체 내의 신분 구별은 성취적인 것이라 하겠다.
참고 자료
강만길, 1994,『고쳐쓴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外, 1994,『한국사9-중세 사회의 해체-』, 한길사
국편위, 1995,『韓國史』34, 교육부
김용섭, 1970,『朝鮮 後期 農業史 硏究』ⅠⅡ, 일조각
김인걸 外, 1987,『韓國中世社會解體期의 諸問題 下』, 한울
박병호, 1985,『한국의 전통사회와 법』, 서울대학교 출판부
, 1986,『한국법제사』, 한국방송통신대학 출판부
신명호, 1998,『조선의 왕-조선시대 왕과 왕실문화』, 가람기획
유승원, 1987,『조선 초기 신분제 연구』, 을유문화사
윤국일, 1986,『經國大典 硏究』, 신서원
李成茂, 1980,『朝鮮初期 身分制硏究』, 일조각
, 1997,『한국 과거제도사』, 민음사
이태진, 1992,『朝鮮 後期 兩班社會의 變化』, 일조각
이화여대사학과연구실 編,『朝鮮身分史硏究』, 법문사
정석종, 1983,『朝鮮後期 社會變動 硏究』, 일조각
지승종, 1995,『조선전기 노비신분 연구』, 일조각
外, 2003,『한국사회사연구』, 나남출판
韓永愚, 1997,『朝鮮時代 身分史硏究』, 집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