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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문제제기
2. 당대 신라의 무역상
2.1 동해 용과 이슬람 상인
2.2 설화의 지리적 위치
2.3 인물들의 이름
2.4 설화의 소재
3. 노인의 정체
3.1 <진성여대왕과 거타지>의 노인
3.2 꽃을 꺾어 제사를 지내던 풍습
4. 자료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 이해와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문제제기
<헌화가>는 고려의 국선(國仙)인 일연이 편찬한 『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第二)편의 水路夫人조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배경이 되는 설화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江陵) 태수(太守)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둘러 있고, 높이가 천 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은 없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종자들이 말하기를,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입니다”라고 하면서 모두 사양하였다. 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와 또한 가사를 지어 바쳤다.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이틀 길을 가다가 또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공이 엎어지면서 땅을 쳐보아도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또 한 노인이 말하기를, “옛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했으니, 이제 바다 속의 미물(傍生)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경내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그 말을 따르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공이 부인에게 바다 속의 일을 물으니, [부인이] 대답하기를, “칠보 궁전에 음식은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의 음식 (煙火)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부인의 옷에는 이상한 향기가 풍겼는데, 이 세상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수로는 용모와 자색이 세상에서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들려갔다.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렇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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