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신생공화국의 발전
(1) 연방헌법(聯邦憲法)의 제정
(2) 연방파(Federalist)와 공화파(Anti-Federalist)
2.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달과 영토 팽창
(1)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시기
(2) 멕시코 전쟁과 서부 개척
(3) 산업혁명
3. 남북전쟁과 재건시기
(1) 노예제와 북부 남부의 분열
(2) 남북전쟁의 결과와 해석
본문내용
1. 신생공화국의 발전
(1) 연방헌법(聯邦憲法)의 제정
독립전쟁 중 아메리카 식민지들은 대륙회의의 권고에 따라 이미 독자적인 헌법을 제정한 바가 있었다. 아메리카 식민지들은 1776년 7월 4일에 대륙회의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13개의 ‘공화국’이 되었고, 1781년에는 연합 헌장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연합회의는 과세권을 갖지 못하는 등 중앙정부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메사추세츠 ‘셰이스의 반란’은 미국의 기득권층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고, 새로운 정부는 각 주에 통치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도 많았는데, 그들은 강력한 정부의 출현은 다시 폭정을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통일된 국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제헌 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가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대표들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의장으로 선출하고 비밀리에 회의를 진행시켰다. 각국 대표들은 대부분이 젊고 부유한 자산가였는데 특히 채권자 출신이 많았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중 제헌 회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버지니아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과 뉴욕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었다.
1787년 미국연방헌법이 채택한 연방제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연방 정부가 필요하다는 데는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했지만 그 구성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에드먼드 랜돌프(Edmund Randolph)가 제출한 버지니아안(the Virginia Plan)과 윌리엄 패터슨(William Paterson)의 뉴저지안(the New Jersey Plan)은 각각 큰 주와 작은 주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의견의 대립으로, 대표들은 타협의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였다. 새 헌법에 관한 ‘대타협’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1787년 7월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참고 자료
이보형, 『미국사 개설』, 일조각, 2005, p.67.
이주영, 『미국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87, p.65.
앨런 브링클리, 『미국인의 역사 1』, 비봉출판사, 2000, p.179.
박종보, 「미국헌법상 기본권의 체계와 이론적 특징」, 미국헌법학회 Vol.17. Nol.1, 2006, p.41.
앨런 브링클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1』, 휴머니스트, 2005, p276.
케네스 데이비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책과 함께, 2004, p.174.
양홍석, 「잭슨데모크라시 여전히 유효한가」, 서양사학연구 Vol.27, 2012, p.287.
양홍석, 「앤드류 잭슨의 국민중심주의와 주권론」, 한국미국사학회 Vol.17, 2003, p.3.
앨런 브링클리, 황혜성 외 역, 『미국인의 역사2』, 서울, 2000, p.38.
김종길, 「남북전쟁이전 미국의 산업혁명과 토착주의운동」, 복현사림 Vol.24 No.1, 2001, p.139.
케네스 데이비스, 『미국의 역사』, 고려원미디어, 1993, pp.156-157.
Mark C. Carnes, 『American destiny : narrative of a nation, vol.1, To 1877』, Longman, 2006, p.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