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시조와 17세기의 전가시조
- 최초 등록일
- 2018.01.21
- 최종 저작일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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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15, 16세기의 江湖時調
Ⅱ. 17세기 시가사의 흐름
Ⅲ. 17세기의 田家時調
본문내용
Ⅰ. 15, 16세기의 江湖時調
1. 강호시조의 초기 전개 양상
15, 16세기 조선 전기 강호시조의 면모는 먼저, 孟思誠(1359,~1438)의 「江湖四時歌」와 李賢輔(1467~1555)의 「漁父歌」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맹사성은 「강호사시가」에서 자연의 풍성함․너그러움과 그 안에 사는 이의 흡족한 긍정이 합일된, 조화의 세계로서의 강호를 제시하였다. 매수의 초장에서 풍성하고 너그러운 강호 세계의 모습이 나타난다.
중장에서는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의 모습이 제시된다. 종장의 전반부는 초장과 중장의 전개과정을 집약하여 강호에서의 삶을 일련의 포괄적 인식으로 거두어 들인다.
이러한 강호의 세계는 「강호사시가」의 종장에서 반복되는 “亦君恩이샷다”의 의미를 통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될 수 있다.
‘또한(亦)’이라는 의미에 주목한다면, 강호의 세계는 임금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인 세속적 현실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즉 세속적 현실에서 이미 이루어진 삶과 ‘함께’ 긍정․찬양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호는 세속적 세계 내지 정치현실의 세계와 단절되었거나 완전히 별개의 차원에 있지 않으며, 강호와 세속적 세계는 모두 합일과 긍정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맹사성의 인식은 조선 전기의 집권사대부층이라는 그의 생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맹사성은 禑王 12년(1386)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1392년 조선 왕조가 건국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76세(1435)의 나이로 좌의정 직을 물러나기까지 약 50년간을 관료로 지냈다.
또한 그가 陽村 權近의 문인이었다는 점 또한 고려한다면 맹사성이 조선 초기 집권사대부층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며「강호사시가」는 집권사대부층의 현실인식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강호사시가」에서 볼 수 있는 낙관적 서정성은 그 이후의 시대까지 길게 지속할 수 없었다.
집권사대부층이 가졌던 이념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초기의 높은 정치적 이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보수적․퇴영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국면에 이르렀던 것이다.
참고 자료
김흥규, 「江湖自然과 정치현실」, 『욕망과 형식의 詩學』(태학사, 1999)
이상원, 「17세기 시가사의 시각」,『조선시대 시가사의 구도와 시각』(보고사, 2004)
김용철, 「17세기 자영농시가의 성립과 특성」, 『조선중기 시가와 자연』(태학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