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과의 경제토크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8.03.03
- 최종 저작일
-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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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저자인 최용식은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으로 순수 민간 경제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정확한 진단과 예측으로 일반인에게 유명하다. 이 책에는 저자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 과정을 대통령 재임기간과 연결시켜 기술하고 있다.
목차
경제 토크 1. 해방과 함께 찾아온 금발의 정책
경제 토크 2. 공갈빵을 먹은 이승만 대통령
경제 토크 3. 경제제일주의를 외친 민주당 정권
경제 토크 4. 천리마를 뒤로 탄 박정희 대통령
경제 토크 5. 스캔들에 휩싸인 전두환 대통령
경제 토크 6. 성장잠재력을 소진시킨 노태우 대통령
경제 토크 7. 부실기업을 인수한 김영삼 대통령
본문내용
이승만 정권
미점령군은 일본을 점령함과 동시에 일본에 농지개혁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빨리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혼란한 때에 국외로 이주했던 230만명의 국외동포들이 해방 직후 한꺼번에 환국하면서 한국은 식량은 물론 다른 생활품 부족이 더 심각해졌다.
이 때 미군정은 다음 네가지 실책을 했다. 첫째, 통화를 무분별하게 발행해 해방 직후부터 조짐이 보였던 물가폭등을 부채질했다. 둘째, 퇴각하는 일본인에게 예금인출을 무제한 허용하고 청산금을 무조건 지급한 일로 금융시스템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다. 금융시스템의 전면적인 붕괴가 진행되자 미군정은 통화를 팽창시켜 대응했다.셋째,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것도 실책이다.
넷째, 물가통제정책을 시행한 것도 실책이다.우리 나라와 반대로 독일은 제 2차 대전 직후 물가통제를 전면적으로 해제함으로써 물가통제 속에서도 폭발적으로 상승하던 물가를 획기적으로 안정화 시켰다.
미군정은 섣부르게 시장경제를 시험했다가 철회하는 등 혼란만 부추겼다. 1945년 10월에는 미곡자유시장을 개설하였으나 가격폭등만 불러왔고, 불과 3개월 후인 1946년 1월 미곡수집령에 의해 통제체제로 전환했다. 다행히 1947년 2월민정장관에 안재홍이 임명된 후 신진관료들이 경제정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안재홍은 젊은이들을 대거 선발하여 미국과 유엔 등의 원조기구에 파견함으로써 선진 경제정책과 경제학을 배우게 했다.
남한만의 총선거 직후 1948.5월 북한의 송전이 중단되고 이승만 정권 성립 직후인 9월 28일에는 남북교역이 전면 중단되는 등 남한의 경제상황이 악화되었다. 10월 여순반란사건이 발생하며 사회적 혼란까지 가중되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공정환율은 달러당 50원에서 450원으로 폭등했다. 그렇지만 수출은 여전히 부진하여 외환보유고가 태부족이었고 좀처럼 물자난이 풀리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