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보는서양문화 레포트 과제
- 최초 등록일
- 2018.05.28
- 최종 저작일
- 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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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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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1) 마라의 죽음
2) 나폴레옹 대관식
3)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2. 지동설
3. 십자군 전쟁
본문내용
-선정 이유 및 목적 : 유럽 3대 혁명 중 하나로 불리는 프랑스 혁명은 절대왕정과 모순을 타파하고 시민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를 세우면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와 자본주의의 시초가 되었다. 혁명의 구호로 내걸었던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을 널리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유럽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되어 선정하였다.
<이미지 중략>
마라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가까운 친구이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인민의 벗’을 창간하여 혁명적인 여론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가 피부병의 치료를 위해 온욕을 하던 중 코르네유의 증손녀 샤를로트에 의해 암살된다. 후에 다비드는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초상을 그렸는데, 미켈라젤로의 ‘피에타’ 속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포즈와, 가짜 탄원서에 적힌 ‘도움’이라는 글자를 ‘자비’로 바꾸고 손가락을 그 ‘자비’라는 단어 위에 놓여 있게 그렸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혁명의 순교자로 마라를 표현했고, 영웅성과 희생을 강조하였다. 프랑스 민중들은 마라의 죽음으로 크게 분노하여 프랑스 혁명에 불을 지폈고, 이후 마라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정신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이미지 중략>
공포정치가 계속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왕당파가 권력을 다시 잡았지만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사태를 제지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고급 장교들은 대부분 해외로 망명한 상태에서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통령(Consulate) 정부를 구성하여, 1804년에 황제로 등극하였다. 위 그림은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그림인데 대관식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규모로 열렸다. 원래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은 오텔 데 쟁발리드의 교회당에서 열리지만, 그 장소가 자신의 대관식으로 이용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하다고 판단되어, 노트르담에서 열리게 되었다. 대관식 장면을 담은 다비드의 그림 또한 가로로 10 미터 정도 되는 크기에 204명의 인물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원하는 ‘정치적 선전’을 위해 다비드가 그렸는데,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과 섞여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