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여말선초라는 문학의 전환기
2) 여말 사대부문학의 채시관풍론과 현실주의
3) 애민의식으로 담아낸 민생실태
4) 이민족의 침입과 전란의 고통
3. 결론 및 비평
본문내용
특정 시기의 문학을 논하는 데 있어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본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시대, 즉 여말선초라는 시기는 이 시기의 문학은 신흥 사대부 문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부란 양반(兩班)의 보편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사대부라는 단어 자체가 선비라는 뜻의 사(士)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대부(大夫)의 복합어이듯, 그들은 문학적인 교양을 지닌 문인학자인 동시에 정치 행정을 담당하는 관인이었다. 임형택, 『한국문학사의 시각』, 창비, 1997, p.359.
신흥사대부들이 등장하는 고려 후기의 시대적 배경 13세기 말 삼별초 항쟁 이후 민심을 잃은 권문세족은 상호관의 혼인관계를 맺어 지배계층으로서의 권위와 권익을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왕실과도 혼인관계를 맺어 외척세력으로서 군림하려 하였다. 또한, 元의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어 그들의 부마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세력을 다진 권문세족은 국정의 전반에 걸쳐 참여함에 따라 자연히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관인 신분으로서 지급받은 것은 녹과전이었는데 소량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심은 私田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토지겸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권문세족과 대립적인 신흥 사대부 계층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자세한 논의는 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입문』, 지식산업사, 1981, pp.251~258. 참조.
을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사대부라는 말 속에는 ‘사대부=문인=관인’ 이라는 중층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신흥사대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인 혹은 관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보다는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신흥사대부는 사대부라는 명칭을 지니고 있지만, 새로 생겨난 사대부라고 할 수 있다. 즉 ‘신흥’이라는 말을 붙였다는 것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이는 기존의 사대부와는 다른 특징을 신흥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본 글에서는 문학사의 관점에서 여말선초라는 시기를 바라보고 그 시기를 대표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신흥사대부 문학과 한 시기에 특별한 문학적 특색을 보인 신흥사대부에 대해 파악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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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택, 『한국문학사의 시각』, 창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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