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소장품Ⅰ. 명승지 유람놀이(남승도)
1. 조선시대에도 어른을 위한 말판놀이가?
2.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에게 유행했던 명승지는 어디일까?
3. 그 중 가장 인기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Ⅱ. 소장품Ⅱ. 마포나루
1. 산수 유람 후 그림으로 남긴 마포나루
2. 왜, 조선후기 들어서면서 산수유람이 유행하고 이와 관련된 글과 그림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을까?
3. 산수유람문화가 조선시대 미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조선시대에도 어른을 위한 말판놀이가?
조선시대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명승지 유람을 동경했다. 유람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였다. 유람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과 주변에서 산수자연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로 가상의 여행을 떠나는 놀이를 즐겼다. 이 명승지 유람 놀이를 위한 그림판이 바로 ‘남승도’이다.
놀이하는 사람들은 어부, 승려, 협객, 미인, 신선, 시인이 되어,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며 명승지를 구경하다가 자신과 관련된 장소에 이르면 술을 마신다.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가 명사들과 잔치를 열고 시를 지은 난정에서는 시인이 술 1잔을 마시고, 중국의 아름다운 호수 동정호에서는 어부가 술 1잔을 마시는 방식이다.
좀 더 자료를 찾아보니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 명승지로 만든 남승도도 찾아 볼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한 것으로 위의 것보다 이전에 전시했던 것이다.
윗줄부터 차례로 언급해보면 ‘해인사, 역남루, 진석루, 애일헌, 조양각, 봉황대, 금척총, 불국사, 탑영지, 통도사, 동작진, 대둔사, 천양정, 약산대, 선연동, 조척석, 묘향산, 기린굴, 능라도, 강선루, 반구정, 속리산, 한라산, 연지봉, 백로주, 황공탄, 도봉, 승가, 진관사, 투금뢰, 청류벽, 봉래각, 금강, 연자루, 가사산, 청심루, 삼계동, 송석원, 백록동, 자각봉, 삼막, 십이봉, 피금정, 계룡산, 송광사, 귀문관, 남한산성, 압구정, 염주대, 부벽루, 사립령, 마곡, 쌍제, 악민루, 방화수류정, 유화정, 자하동, 연광정, 퇴조비, 녹운치, 지리산, 만세교, 마니산, 읍청루, 월파정, 수양산, 금강산, 도화담, 청학동, 석왕사, 산영루, 풍월정, 집승정, 소동루, 죽리관, 탁영정, 부용당, 오대산, 조룡대, 오작교, 분수령, 백운대, 적벽, 박연폭, 만월대, 선죽교, 취적교, 명사, 오색수, 낙화암, 국화평, 경포대, 만경대, 총석정, 삼일포, 사선정, 죽서루, 월송정, 청간정, 낙산사, 구절판, 채석강, 옥매산, 금곡, 한벽루, 구담, 도담, 사인암, 삼선암, 옥순봉, 의림지, 탄금대’ 이다.
참고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안내판>
<산수애호와 문예지향의 삶, 2008, 윤성훈>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2001, 고연희>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2012, 고연희>
<조선시대 유람의 유행에 따른 문화촉진 양상, 2012, 이상균>
<1930년대 금강산 기행가사에 투영된 여행체험의 의미, 2018, 유정선>
<한국 한문학의 전통적 사유와 문예미 17-18세기 기유문예의 두 양상, 2010, 이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