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정치체제 변화
- 최초 등록일
- 2018.08.16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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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왕정
3. 공화정
4. 제정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유명한 말처럼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제국 이 아니다. 로마는 B.C 8C부터 A.D 5세기, 13C간 전개된 그 긴 역사에서 발전하는데 큰 굴곡들이 있었지만, 그들 특유의 단결력과 협동심으로 그들의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면서, 끝내 는 지중해 연안의 패권국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로마의 정치체제 변화를 중심으로 로마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고자한다.
2. 왕정
초기 로마의 지배자는 왕(rex)이었으며, 최고 권력자이자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왕은 종신토록 재임했지만 세습되거나 민회에서 선출되지 않았고 그보다는 대귀족 가문의 가부장들이 선출하여 민회에서 확정된 듯하며,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의 왕이 되면서 왕권은 군 통수권, 사법권, 제사권 등을 망라(網羅)하게 되어 거의 총체적인 국가 수장의 지위가 되었다. 군 통수 권자로서 왕은 외교를 관장하며, 선전포고와 휴전을 결정했다. 또 군대 훈련과 시민 징병, 전 시 세금 부과, 전리품 및 토지 분배도 왕의 권한이었다. 왕은 내정과 법 집행의 책임자로서 입법권과 사법권을 동시에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자신의 릭토르(lictor) 들을 통해 법을 집행 했다. 그 외에 도시 담당관이 왕 부재시 대신 국정을 수행하고, 재판관들이 반역이나 공공 범 죄를 재판했다.
원로원(Senatus)은 왕에게 조언을 하는 지도급 원로들의 회의체였다. 최초의 원로원은 씨족 지도자들의 회의체로 추정되며, 숫자는 왕정 시대에는 약 100명 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입법 권이 없었고 왕이 자문할 때 조언을 할 수 있었다.
로마의 민회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왕정 시대에 최초로 창설된 로마의 민회는 쿠리아회 (comitia curiata)였다. 쿠리아회는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시민들로 구성되었다. 이 민회는 왕이 어떤 사업에 대해 재가를 받기 위해 소집할 때에만 모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