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6년 공민왕 반원정치 재론
- 최초 등록일
- 2018.08.27
- 최종 저작일
-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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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반원정치를 둘러싼 제설(諸說)의 검토
3. 1356년 10월 고려 서한의 분석.
4. 맺음말.
본문내용
1356년 공민왕의 반원정치란 공민왕이 기철, 노책, 권겸등 그동안 원에 기댔던 친원세력 을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혁파하며, 압록강 서쪽 8참과 쌍성총관부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하였던 수 개월간 진행된 일련의 사태를 가리킨다. 이 사건으로 고려와 몽골은 군사적 충돌의 위기까지 직면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고려의 요구를 원이 수용하면서 외교적으로 해결 되었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을 반원정치로 보는 것은 매우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1917년 이케우치 히로시는 공민왕이 원의 혼란을 틈타 원과 밀착되어 횡포를 부린 기철일파에게 모란의 혐의를 씌워 전격적으로 주멸(誅滅’)하였음을 밝히고 이것을 계기로 고려가 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고 시사했다. 이러한 견해는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개설서와 교과서에서도 수록되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공민왕의 반원정치에 대해 국내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1968년 민현구 에 의해서 였다. 그는 신돈의 개혁을 중심으로 정치사를 설명하는 가운데 공민왕에 의해 단행된 반원 조치를 획기적인 사건으로 주목하였고 공민왕의 개혁에도 주목을 하게 되면서 반원정치와 개혁을 묶어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민현구는 이러한 공민왕의 개혁이 부원세력을 제거하고 반원자주적 조치를 취한 정치적 사건이라기보다는 대내적 개혁의 시도가 포함된 반원적 개혁정치 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가 개혁정치에서 대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고 해서 반원적 의미를 과소평가 한것은 아니다. 민현구는 이케우치 히로시가 반원정치의 배경을 원의 쇠퇴에서만 찾았던것을 비판하면서 공민왕의 개혁은 고려의 발전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며 고려가 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왕조 교체의 시작점을 마련하였고 고려후기 정치사를 발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보았다.
참고 자료
이익주 (2015). 1356년 공민왕 反元政治 再論. 역사학보, 225, 5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