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작품론
- 최초 등록일
- 2018.10.27
- 최종 저작일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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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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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내용소개
2. 작품의 주제
3. 기존의 연구성과 정리
4. 감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제 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이 거느리는 낭도 가운데 급간(級干, 신라의 관등 제9위) 득오라는 이가 있어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는 날마다 충실하게 출근했는데, 한번은 열흘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죽지랑은 득오의 어머니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가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당전(幢典, 신라의 군직명으로 부대장)인 모량부(牟梁部)의 아간(阿干, 신라의 관등 제6위) 익선이 내 아들을 부산성의 창고지기로 임명했으므로 급히 달려가느라 낭에게 하직을 고할 틈이 없었노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죽지랑은 당신의 아들이 만약 사사로운 일로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으나 공적인 일로 갔다니 마땅히 찾아가 대접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떡 한 함지와 술 한 항아리를 노복들에게 들려 득오를 찾아나섰다. 낭도 137명도 역시 의장을 갖추고 그를 시종했다. 죽지랑 일행은 부산성으로 가서 득오를 만나 가져온 술과 떡으로 그를 먹였다. 그리고는 익선더러 득오에게 휴가를 주어 자기와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다. 익선은 죽지랑의 소청을 굳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때 간진(侃珍)이란 사리(使吏, 수송 임무를 띤 관리)가 추화군 능절의 벼 30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수송해가다가 이 일을 알았다. 간진은 죽지랑의 선비를 중히 여기는 품격을 내심 찬미하는 한편, 익선의 사람됨이 어둡고 막힌 것을 더럽게 여겼다. 이에 그는 가지고 가던 30석의 벼를 익선에게 주면서 곁들여 죽지랑의 청을 도왔다. 그래도 익선은 허락하지 않았다. 간진은 다시 사지(舍知, 신라 관등 13위) 진절의 말과 안장을 주었다. 그제서야 익선은 허락했다.
조정의 화주(花主, 화랑단을 관장하던 관직)가 이 사실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익선을 잡아다가 그 추악함을 씻어주려 했다. 익선이 달아나 종적을 감추지 그 맏아들을 잡아갔다. 때는 바로 11월, 극심하게 추운 날인데 그 아들을 성안의 못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얼어죽고 말았다.
참고 자료
양주동, 『고가연구』, 일조각, 1980.
김완진,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출판부, 1980.
최철, 『향가의 문학적 해석』,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0.
김학성, 『향가 장르의 본질』, 한국시가연구 창간호, 한국시가학회, 1997.
박노준, 『신라가요의 연구』, 열화당, 1982.
신재홍, 「모죽지랑가의 시대배경과 현실인식」,『국어교육』,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