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 발제문
- 최초 등록일
- 2018.11.02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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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배재학당의 개관과 학생들의 독립운동 내용 발표를 위한 발제문
목차
1.배재학당 개관
2.배재학당 학생들의 독립운동
본문내용
배재학당(培材學堂)은 1885년 미국 북감리교(北監理會) 선교사였던 아펜젤러(H. G. Appenzeller) 목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세운 사립학교다. 당시 우리나라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朝佛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면서 천주교의 포교는 어느 정도 인정 되었지만, 개신교는 조선 정부와 조선인들의 반감이 커 인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종이 개신교 선교사들의 요청에 선교사들의 활동을 의료·교육 사업으로 국한시켜 허락하자, 선교사들은 의료·교육 분야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배재학당은 아펜젤러가 당시 미국 공사의 도움으로 학교 설립을 위한 허가를 받아 정동에 매입한 가옥에서, 이겸라, 고영필 두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을 시작으로 학생 수를 점차 늘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고종(高宗)은 1886년 친히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교명을 지어 사액(賜額)을 내려주었고, 10여 명의 학원(學員) 당시에는 학생을 學員이라고 불렀다. 을 보내 교육을 받게 하는 등 호의를 보였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탐구당, 2003.
윤성렬, 『도포입고ABC 갓 쓰고 맨손체조』, 학민사, 2004.
유영렬 外, 『19세기말 서양선교사와 한국사회』, 경인문화사, 2005.
류방란, 「개화기 배재학당의 교육과정 운영」, 『교육사학연구』, 서울대학교 敎育史學會, 1998.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