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간호역사속의 간호역할 확대를 위해 기여한 리더 분석 및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 제시
- 최초 등록일
- 2018.12.20
- 최종 저작일
-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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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국간호역사속의 간호역할 확대를 위해 기여한 리더를 분석
2. 간호전문직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간호리더의 역할을 제시
본문내용
1.한국간호역사속의 간호역할 확대를 위해 기여한 리더를 분석
<김 마르다>
- 김 마르다의 삶과 업적
➀김 마르다는 의처증이 있고 질투심이 많은 남편으로 인하여 오른손 손가락들과 콧등이 절단되어 불구가 되었음.
②보구여관에서 메리 커틀러 의사의 치료를 받게 됨.
*‘보구여관‘이란 188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임.
당시 스크랜튼(Scranton,W.B.) 목사가 한국 여성들만을 위한 병원설립기금의 청원을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부에 제출하였음. 한국에는 여성이 남자병원에 갈 수 없는 풍속이 있었기 때문임. 이것이 승인되어 같은 해 미국 감리교 여의사인 하워드(Howard,M.)가 내한하여 여성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하였음.
▲ 한국 최초의 여성 병원 보구여관, 1904년 사진
③김 마르다의 사정을 들은 의사의 배려로 인해 김 마르다는 빨래, 청소 등을 하여 병원에서 숙식을 하게 됨.
④김 마르다가 신실하게 일하는 것을 지켜보던 커틀러 의사는 김 마르다에게 간호보조 일을 하게 함.
⑤김 마르다는 병원에서 환자를 간호하며 황(黃袂禮) 전도부인으로부터 기초적인
간호 일과 한글을 배움.
⑥1898년에는 낮에는 빨래와 청소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밤에는 환자를 돌보는 입원병동의 간병인 일을 함.
⑦김 마르다는 점차 일이 나아지면서 간호보조들을 감독하고 돌보는 사감 역할을 담당함.
<중 략>
- 본받을 점
김마르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직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자신의 일을 갖고 살아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줌. 그녀 이전에는 조선 여성 일부가 병원에서 일하기도 하였지만 환자의 피고름을 닦는 수준이어서 ‘의사 보조’로 불렸음. 김마르다는 근대교육을 받은 첫 한국인 간호사로서 환자를 보살피고, 간호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힘을 쓰기도 하였음. 근대 여성의 삶과 ‘간호사’라는 직업에 헌신한 그녀의 봉사정신과 노력을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함.
참고 자료
윤정란,「일제강점기 박자혜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아내로서의 삶」(2009)
참고사진 및 출처: 다큐멘터리 mbc 프라임, 여성문화유산 연구회
경향신문 1996년 11월 16일 조호연 기자 기사(인터뷰)
간호학대사전
대한간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