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군산에 남아있는 일제의 건축물
1. 일본인 주거시설
2. 근대 상업시설
Ⅲ. 목포에 남아있는 일제의 건축물
1. 근대적 항구 형성
2. 동양척식주식회사 건축물
Ⅳ. 일제 건축물의 관광지화에 대한 의견
Ⅴ.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군산은 인근의 비옥한 김제, 만경평야의 곡창지대와 연결되어 있고 서해안과 붙어있는 항구도시로 물자가 모이는 집산지이자 교역의 중심지였다. 일본은 토지 수탈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군산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경제 착취를 하였다. 토지수탈을 위해 호남지역과 충청지역의 농토를 빼앗아 일본인 농민들이 살게 하였고 그 결과 군산을 중심으로 한 전북지역에 일본인 농장들이 모였고 일본 식민정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목포는 1897년에 개항하여 일본 제국 본토로의 곡물 수탈항이였고, 토지 수탈을 위해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세워서 농민들의 농토를 빼앗아갔다. 목포 역시 수탈의 기점 역할을 했던 도시로 개항 이후에 남아있는 유적들이 많다.
근대적인 항만시설과 철도, 도로 등의 건설로 군산은 급격히 성장하여 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공서, 상가, 주거시설 등의 근대건축물이 건설되어 군산은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개항 직후와 일제시기에 군산에 건설된 근대 건축물들 중 이미 많은 숫자가 심하게 훼손되거나 멸실되어 그 원형을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 와중에서 남은 건축물들은 지켜 앞으로의 세대들이 지켜야한다.
우리 문화재에는 일제강점의 흔적이 담긴 역사 유산들이 적지 있다. 아픈 역사의 흔적, 바로 “네거티브 문화재”다.우리나라 20세기 전반의 근대 문화재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일제의 유산 즉 “네거티브 문화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Ⅱ. 군산에 남아있는 일제의 건축물
1. 일본인 주거시설
‘히로쓰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일본식 가옥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때 주택으로, 지난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 군산부 협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포목점을 운영했던 ‘히로쓰 게이사브로’라는 일본인의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히로쓰는 대지주가 많았던 군산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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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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