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9.04.10
- 최종 저작일
-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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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도입부
2.작가 소개
3. 작품 소개
4. 감상평
1) 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은 무자비하게도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2) 효(孝)의 실천이 구국(救國)의 근본이 되다.
3) 흐트러지고 약한 모습이 더욱 매력적이고 신선하다.
4) 격동의 정유년, 명량에서 절정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다.
5) 그가 조선에 태어나 참 다행이다.
본문내용
[도입부]
임진왜란이 낳은 걸출한 영웅 이순신을 우리는 보통 광화문 광장에 당당히 서 있는 동상의 모습으로, 혹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 연출된 배우의 연기를 통해 이미지화 한다. 그러나 제3자에 의해 해석되고 연출된 이미지가 아니라 이순신의 일기를 통해 몸소 그의 일상생활과 감상(感想)을 여과 없이 바라보고 이순신을 내 식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장군이기 이전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시기를 마주하고 견디어냈을까 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열었다.
[작가 소개]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조상대대로 문신 집안이었으나 기묘사화의 참화로 가세가 기울어진 가운데 관직이 없는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변씨 사이에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28세 되던 해에 무인 선발시험의 일종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하였으나 불운하게도 실격하고 4년 뒤인 1576년(선조 9) 식년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관직에 나갔다.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에 보직되고, 이듬해에 발포수군만호를 거쳐, 1583년 건원보권관·훈련원참군을 역임하고, 1586년에는 사복시주부가 되었다. 사복시주부에 이어 조산보만호 겸 녹도둔전사의가 되었다. 이때 국방의 강화를 위하여 군사를 더 보내줄 것을 중앙에 요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던 차에 호인(胡人)의 침입을 받고 적은 군사로 막아낼 수 없어 부득이 피하게 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죄라 하여 문책하여 첫번째로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되었다.
그 뒤 전라도의 조방장·선전관 등이 되고, 1589년 정읍현감으로 있을 때 유성룡에게 추천되어 고사리첨사로 승진하고 이어 절충장군으로 만포첨사·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47세가 되던 해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곧 왜침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좌수영(여수)을 근거지로 삼아 전선(戰船)을 제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고, 나아가서 군량의 확보를 위하여 해도(海島)에 둔전(屯田)을 설치할 것을 조정에 요청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