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은행 -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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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은행 다 떨어지겠다.”
바람이 부는 가을 날 밤, 엄마는 외투를 걸치고 잠시 산책하고 온다며 현관문을 열고 나가신다. 때가 타서 시커멓게 변한 운동화를 신고서. 그러면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손에 은행을 한 줌 쥐고 오시는 것이다. 그걸 왜 주워 오냐고 해도 엄마는 구워 먹으면 이것만큼 맛있는 게 없다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신다. 꿉꿉하고 덥고, 긴 여름 끝자락에서 비로소 가을 문턱에 들어섰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바로 은행나무들을 통해서다. 은행잎이 노랗게 변했다 싶으면, 알아차리기도 전에 길가 곳곳에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냄새뿐만이 아니다. 은행나무는 가을이 왔다는 걸 온몸으로 알리려고 한다. 은행잎이 소복하게 깔린 노란 길을 걷는 건 기분이 좋지만, 여러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다 보면 은행잎과 은행 열매가 잘 으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냄새만 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신발 바닥 아래서 충분히 밟힌 물질들은 미끌미끌해져서, 자칫하다간 넘어질 수도 있어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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