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운-고려시대사 요약정리 자료
- 최초 등록일
- 2019.05.06
- 최종 저작일
-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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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제2장 고려전기 귀족사회의 성립과 전개
1.신라에서 고려로의 교체와 호족
2. 전기 귀족사회의 성립
3. 전기 귀족사회의 전개
Ⅱ. 제3장 고려전기 귀족사회의 여러 구조
1.전기 귀족사회의 정치체제
2.전기 귀족사회의 경제구조
3. 전기 귀족사회의 사회구조
Ⅲ. 4장 고려후기 무신정권과 그 사회
1. 무신정권의 성립과 그 변천
2. 무신집권기의 경제와 사회
3. 무신정권기의 대외교섭-몽고와의 전쟁
Ⅳ. 5장 고려후기 세족과 권문과 신진사류의 사회
1.후기 세족·권문과 신진사류사회의 정치적 변화
본문내용
1.신라에서 고려로의 교체와 호족
(1)골품제의 동요
진골귀족의 분열: 중대의 왕권이 약화되며 대공의 난이 일어났고 심지어 무열왕계인 혜공왕이 내물왕계인 상대등 김양상과 이찬 김경신에 의해 피살당함.
중대의 무열왕 직계는 단절되고 김양상이 선덕왕 김경신이 원성왕에 오르며 이후 원성왕 계열이 왕위 계승. 여기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후에도 신라하대는 끊임없이 무력을 이용한 왕위쟁탈전이 일어남.
6두품의 도전: 골품제도 하의 6두품은 6관등인 아찬까지 승진 가능해 장관급 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차관급 까지만 오를 수 있었음.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같은 도당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지만 실패. 이들은 유랑생활이나 다른 후삼국의 관료가 되며 反신라적인 활동을 함.
(2)대토지겸병과 전장의 확대
녹읍과 전장제의 문란: 관료에게 지급되던 녹읍은 녹읍지 내의 일정지역, 촌락의 수조권뿐만 아니라 공부와 역역까지도 수취할 수 있었음.
신문왕 때 왕권강화로 관료전(단순수조지)과 녹봉을 아울러 지급하는 제도로 대체되고 녹읍제는 일시 폐지되기도 하지만 일시적, 결국 귀족들의 반발로 부활하고 식읍도 함께 존재했음.
재상가에는 녹(祿)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奴僮)이 3000명이고, 비슷한 수의 갑옷과 무기, 소, 말, 돼지가 있었다. 바다 가운데 섬에서 길러 필요할 때에 활로 쏘아서 잡아먹었다. 곡식을 꾸어서 갚지 못하면 노비로 삼았다. 〈신당서〉
賜田이나 신간지 개척, 권력에 의한 농민 토지강점과 약탈 및 고리대 등등의 방법으로 귀족들의 전장은 점차 확대. 이 땅에 대해서 귀족은 不輸의 특권을 가짐.
재상가에는 녹(祿)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奴僮)이 3000명이고, 비슷한 수의 갑옷과 무기, 소, 말, 돼지가 있었다. 바다 가운데 섬에서 길러 필요할 때에 활로 쏘아서 잡아먹었다. 곡식을 꾸어서 갚지 못하면 노비로 삼았다. 〈신당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