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호란
- 최초 등록일
- 2019.06.07
- 최종 저작일
-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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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임진왜란
1. 임진왜란의 배경
2. 임진왜란의 전개와 결과
Ⅱ. 호란
1. 호란의 배경
2. 호란의 전개와 결과
본문내용
임진왜란의 배경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는 15세기 중엽부터 약 100년간 지방의 호족세력인 다이묘들 사이에 전쟁을 벌이는 전국시대로 접어들었는데, 1573년에 오다 노부나가 교토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을 추방하여 막부를 무너뜨리고, 이어 1585년에 그의 부하였던 오사카 추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가 드디어 정권을 장악했다. 국내통일에 거의 성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이묘들의 불만을 밖으로 분출시켜 국내를 안정시키고, 밖으로 조선과 명을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 침략전쟁을 계획했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쓰이는 교과서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발발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6세기 들어 북쪽에서는 여진족이 자주 국경을 침범했고, 남쪽에서는 3포 왜란과 을묘왜변 등 왜인의 소란이 자주 일어났다. 이에 조선은 국방 문제를 전담하는 비변사를 설치하고 사신을 보내 일본 정세를 파악하려 했지만,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방군수포 군대에서 복무해야 할 군인에게 포를 받고 복무를 면제해 주던 것으로, 군사 지휘관에 의해 사사로이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의 성행으로 국방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을 이루었다. 이후 불평 세력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자신의 대륙 진출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하였다(임진왜란, 1592)
이렇듯 일본은 1510년 삼포왜란, 1555년 명종 때 을묘왜변을 일으켜 조선침략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조선은 군사 문제를 전담하는 임시기구인 비변사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지만,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하였다. 일본은 먼저 정탐꾼을 조선에 보내 한반도의 지형과 정치정세를 세밀하게 조사하고, 드디어 침략의 명분을 찾기 위해 명나라를 치러가는 데 길을 빌려달라는 이른바 ‘정명가도’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조선은 이를 거절하였고, 드디어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임진왜란의 전개와 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끝을 낸 전국시대(戰國時代)는 겉으로는 통일정권이었지만, 내란기간 중 강성해진 여러 무인세력들은 여전히 불안 요소로 남아있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