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기 및 주후 1세기 신약의 배경
- 최초 등록일
- 2019.06.11
- 최종 저작일
- 2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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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알렉산더 이후 왕국 분열 및 팔레스타인 상황
2. 시리아의 지배와 유대의 독립전쟁(마카베오 혁명)
3. 로마제국
4. 하스몬 왕국
5. 헤롯 왕가
6. 로마총독들의 통치(AD 44-66)
7. 유대전쟁(66-70)
본문내용
1. 알렉산더 이후 왕국 분열 및 팔레스타인 상황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남 유다(BC 586)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후 새롭게 부상한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하고(BC 539/8), 포로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페르시아의 정책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성전을 재건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페르시아가 쇠퇴할 때쯤 유럽에는 빌립2세가 주도하는 마케도니아가 등장한다. 빌립2세가 죽은 후(BC 336), 알렉산더는 나이 20세에 왕위를 이어받고 동방원정 길에 올라 페르시아를 점령한다(BC 331). 알렉산더는 과도한 원정과 전쟁으로 인해 열병에 걸리게 된다. 결국 알렉산더는 열병에 걸린 지 일 년 만에 죽게 되었다(BC 323).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인해 새로운 헬레니즘이라는 문화가 형성된다. 알렉산더가 죽자 마케도니아는 그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서 3분할 통치가 이뤄진다.(BC 301)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는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은 두 왕조의 전쟁 결과에 따라 자신의 노선을 어디에, 어떻게 둘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 벌어진 6차례의 전쟁을 정리해보자. 4차 전쟁까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승리하여 100여 년간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게 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페르시아 및 알렉산더 대왕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종교 업무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고 유대인 사회를 산헤드린을 통괄하는 대제사장을 조종함으로써 다스렸다. 5차 전쟁에서 승리한 시리아는 이때부터 팔레스타인을 지배한다.(BC 200-142) 유대인들은 세력 판도가 시리아 인들에게 유리한 것을 간파하고 시리아 편에 가담했다. 그 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 시리아 인들로부터 호의적인 대우를 받는다. 전쟁 중에 예루살렘이 입은 손해를 복구하였으며 지금까지의 권리보다도 더 큰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호적인 관계는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헬라주의화의 열렬한 대변자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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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성. 신약의 배경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로제. 신약성서 배경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