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최초 등록일
- 2019.06.12
- 최종 저작일
-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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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유년기의 메테르니히
2. 외교관으로서의 메테르니히
3. 외무장관으로서의 메테르니히
4. 해방전쟁
5. 제1차 파리 평화조약
6. 외교의 본질
Ⅱ. 결론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메테르니히는 보수 및 반동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인물은 나폴레옹 체제가 붕괴된 이후 유럽을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질서 체제, 즉 절대왕정 체제로 회귀시키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급속히 확산되던 민족주의 및 자유주의도 철저히 탄압하려고 했다. 실제로 그를 비롯해 왕조를 복원하려는 봉건 세력들은 자유보다는 평화, 혁신보다는 질서라는 논리를 앞세워 빈 체제라는 과거의 절대주의 기대로의 회기를 지향했던 것이었다. 평화가 깨지면 전쟁과 혼란이 온다는 개념은 기득권 세력이나 봉건 세력이 만들어낸 논리였으며, 절대주의를 통해 이익을 많이 본 봉건적 세력들이 만들어낸 상대적 개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속에서 메테르니히의 이러한 정치적 노선은 ‘오스트리아의 국익을 우선시 한다. 라는 그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독일 및 오스트리아 역사학계에서 제기되었고 그것에 대한 설득력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대되고 있다. 실제로 메테르니히는 활동 기간 중 오스트리아 국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했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정책들도 강력히 추진했다. 즉 그는 유럽의 제 열강,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중에서 어느 국가도 독자적으로 다른 국가들을 제압할 능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소위 ‘균형이론’을 제시했고 거기서 오스트리아의 중재 역할도 강하게 부각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추진한 ‘유럽정책’ 의 핵심적 내용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메테르니히는 독일권에서 오스트리아의 우위가 인정된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 양강구도도 견지시키려 했다. 따라서 그는 반통합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는데 이것은 독일 통합보다 오스트리아의 국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관점과 그것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조된 ‘유럽 열강 간의 균형’ 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우위권 확보’ 를 토대로 정립된 것이 바로 메테르니히 체제였는데 이렇게 메테르니히 체제가 세워지기까지 메테르니히가 해왔던 외교 활동을 중심으로 그가 가졌던 그의 관점과 가치관을 살펴볼 것이다.
참고 자료
김장수, 「국익을 우선한 현실정치가 메테르니히」, 푸른사상, 2019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회복된 세계」, 북앤피플, 2014
김진호, 「근대 유럽의 역사」, 한양대학교 출판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