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동리(桐里) 신재효
1) 생애
2) 시대상과 판소리
3) 업적
Ⅲ. 작품을 통해 본 신재효
1) 신분적 열등감
2) 판소리의 개작
3) 사설속의 특징
Ⅳ. 맺음말
Ⅴ.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동리 신재효(申在孝) 라는 인물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판소리 분야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면 잘 모를 인물이다. 물론 필자도 작년에서야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5년 류승룡, 배수지 주연의 영화 <도리화가>가 개봉하였다. 영화 <도리화가>는 판소리를 정리한 업적을 새운 신재효(류승룡)와 그의 제자 진채선(배수지)를 다룬 영화이다. 물론 영화 <도리화가>는 흥행에는 실패하였지만, 판소리라는 아이템을 주목하게 해주고, 특히 대중들에게 ‘신재효’라는 인물을 알릴 수 있었던 참된 시도였다고 생각이 든다.
신재효는 판소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배우는 판소리 사설이 지금과 같이 온전하게 남아있었을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없었더라면 지금에 남아있는 판소리 사설은 물론, 체계적인 판소리 연창자 훈련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신재효는 판소리를 선택했을까? 우리는 그와 같은 물음에 잠깐 답을 얻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 글을 진행해가려 한다.
Ⅱ. 동리(桐里) 신재효
1) 생애
신재효는 1812년 11월 6일에 태어났다. 생애 대부분을 그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에서 보냈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고향 근방에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고창에 탄탄한 기반을 가진 중인 출신이어서 배움에 지장은 없었으나, 특별한 선생에게 사사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 교육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대에 들어 그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고창현에서 아전 노릇을 했고, 말년에는 고을의 기생과 광대 등을 관리 감독하는 호장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이 때 부터 판소리나 가무 등에 익숙해지고 흥미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탄탄대로였던 그의 바깥일과는 달리 그의 가정사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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