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와 발해의 복식문화
- 최초 등록일
- 2019.10.22
- 최종 저작일
- 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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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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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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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0. 통일신라의 역사적 배경
① 신라 660년에 백제, 668년에 고구려 정복
676년 문무왕 대에 나당전쟁 승리로 삼국통일
② 통일 이후 영토와 인구 확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큰 변화
③ 7세기 말 신문왕 : 유교 교육 진흥을 위한 국학 설치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 완비
④ 8세기 중반 경덕왕 : 국학->태학감 /유교교육 강화
but 귀족층의 주장으로 불국사 창건
⑤ 8세기 후반 이후 귀족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치열해 지면서 6두품과 지방 호족의 세력 성장
⑥ 9세기 전반 834년 흥덕왕 : 복식금제령(사치 제어)
⑦ 9세기 말 : 지방 세력 더욱 성장하며 신라 왕실의 세 력 약화
⑧ 935년 경순왕 고려에 귀순하며 통일신라 멸망
→ 통일신라의 귀족문화 = 고구려/백제문화 + 당문화
1. 통일신라 복식 문헌자료와 유물
[삼국사기], [삼국유서], [구당서], [신당서], [일본서기]
<7세기 황성동 고분출토 남녀 토용>, <8세기 용강동 고분 출토 남녀토용>, <무덤 앞의 문관상과 무관상 십이지신상>, <당의 장회태자 이현묘 벽화>
2. 통일신라의 복식 中 ≪흥덕왕 복식금제≫ + 직물
-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와 당의 교류 흔적
- 648년 진덕여왕 : 당나라의 의대 수용
- 664년 문무왕 시기 부인복식제도 수정
- 통일 이후 지속적으로 사신 왕래를 하며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당의 복식 문화 받아들임
=> 기존의 고유 복식에서 당시 국제적으로 유행하던 당풍으로 조금씩 변화
- 8세기 후반 이후 호족 세력이 성장하면서 복식 제도가 더욱 문란
- 흥덕왕 :834년 복식의 사치를 금하기 위해 복식금제
- 신분계급, 성별에 따른 직물, 문양, 색상을 자세히 정해놓음
● 복식금제
- 남자 : 관모(복두), 겉옷(표의), 내의, 바지(고), 소매가 없는 겉옷(반비), 요대(허리에 두르는 것), 버선(말), 신발(화), 화대(신발에 두르는 것), 신발(이), 직물소재(포)에 대한 규정 포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