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권과 조선후기 경제구조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19.10.28
- 최종 저작일
- 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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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도정권과 조선후기 경제구조의 변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세도정치의 시작과 과정
2) 세도정권의 구조와 성격
3) 세도정권의 농민수탈
본문내용
15세기의 왕조 성립기를 통해 한때 안정되었던 조선왕조 사회는 16세기로 접어들면서 벌써 민중세계의 저항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왕조의 지배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은 소극적으로는 군역을 비롯한 각종 부역을 기피하는 피역저항으로 나타났고 적극적으로는 화적 혹은 반란의 형태로 나타났다. 16세기 후반기 임꺽정란 ․ 정여립란 등은 이와같은 민중세계 저항운동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왕조의 지배체제는 이 전쟁과 뒤이은 병자호란으로 그 허점이 모두 드러났다. 어느 의미에서는 이들 전쟁은 왕조의 지배체제 및 양반계층의 지배능력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 전쟁이기도 했다. 임진왜란은 중국에서는 왕조의 교체를, 일본에서는 정권의 교체를 가져오게 했으나 정작 전쟁터였던 한반도에서는 이미 역사적 탄력성을 잃은 조선왕조가 그대로 지속되었다.
두 차례의 전쟁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되다시피 한 조건 아래서도 지배층인 양반층의 일부는 벌열화, 귀족화를 지향하면서 비생산적인 당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에 반해 민중세계는 전쟁피해를 복구하면서 농업생산력을 어느정도 향상시키고 상공업을 발전시켰다. 이리하여 전쟁 후의 정치적 ․ 사회경제적 모순의 심화는 가속화했다.
한편,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일부 실학적 지식인층은 이와같은 민중세계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여 국가경영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했다. 그러나 왜란 당시의 의병장 등 민간 지도층에 대한 집권세력의 숙청과 북벌론과 같은 긴장정책의 강행 등으로 이 지배체제에 대신할 만한 정치세력은 형성되지 않았고, 지배권력과 민중세계의 괴리현상만 심화되어갔다.
민중세계의 지속적인 저항에 시달리던 조선왕조 지배권력은 대동법과 균역법을 통해 수취체제를 개량함으로써 민중세계의 불만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18세기 후반기에는 당쟁을 해소하려는 얼마간의 노력이 나타났는가 하면, 실학사상가들의 일부가 대단히 제한된 조건 속에서나마 정권에 접근해가서 어느정도 진보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기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