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문화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3.08.16
- 최종 저작일
- 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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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조사 지역의 문화적 배경
Ⅱ. 현지 사례
(1) 소 재 지 : 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제동리 제동마을
(2) 조사일시 :
(3) 조 사 자 :
(4) 조사지 개관
(6) 위치와 형태
(7) 제작 연대 및 유래
(8) 관련의례
(9) 제보자
(10) 참고문헌
Ⅲ. 소감
본문내용
Ⅱ. 현지 사례
(4) 조사지 개관
부산 사상의 서부터미널에서 창원시 대산면 가술리 경유 밀양행 12시 40분 고속버스를 타고 김해 장유, 진영, 장등마을을 거쳐 가술리에서 내렸다. 장등마을 에서부터 시골풍경이 펼쳐지더니 대산면 가술리는 평범한 면소재지 정도의 시골풍경 이었다. 여기서 친구의 외삼촌 댁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친구 외삼촌의 도움으로 우리는 20분정도 거리의 근처 마을으로 가서 조사를 하려고 했으나, 얼마전에 새 길을 내면서 장승과 당산나무를 모두 없애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가술리로 왔다. 가술리의 동사무소에서 도움을 청해서 거기서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제동이라는 마을로 가기로 결정했다. 30분정도 걸어서 제동마을에 도착했다.
그래서 우리는 창원시 중에서 가술리, 제동리, 갈전리, 일동리, 모산리, 북부리, 우암리,유등리로 구성된 대산면의 제동리에서 조사하게 되었다.
대산면은 밀양시, 김해시와 경계로 도시근교 농촌지역이며 농경지가 70%이고 면적은 33.82㎢ 이고 세대 및 인구는 3,291세대 9,780명 이다. 수박, 화훼, 시설채소등 최첨단 영농기술단지 소재이고 높은산과 계곡이 없고 지반이 해수층으로 지하수원이 부족하여 생활용수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대산면의 역사는 당초 김해군에 속하였으나 1908년 9월 창원부에 편입되었으며, 1910년 다시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대산면이 행정단위로 출발하게 된 것은 1914년이었다. 이때 일제는 동문의 왕정리와 노촌리 일부, 김해군 상북면 가동리 일부를 합하여 창원군 대산면이라고 칭하고 행정구역의 틀이 되는 8개리를 관할하게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부로 창원시에 통합하여 현재의 창원시 대산면이 탄생하였다.
문화는 창원시 문화재 자료 225호인 "주남돌다리"가 있다. (창원시 대산면 가술리 590번지)
창원시 대산면 제동리 에는 황무지로 되어 있는 높은 벌판 위에다 집을 일렬로 지은 고등포마을, 대산면에서 진 영읍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동네인 물통거리, 신동과 고등포 마을 주남 마을로 에워싸인 동네인 새다리, 상등 마을 남쪽에 있는 작은 동산인 상등, 제동리의 신동마을과 고등포 마을과 상포 마을로 에워싸인 동네인 상등, 신동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100m쯤에 있는 마을인 신동, 대산면 면사무소에 서 동쪽으로 250m쯤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산에서 제일 높은 산인 제동, 대산면의 최서단에 위치한 동네로 동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주남, 대산 벌판 남단과 진영읍 부곡리 광대현마을 북쪽과 남포강 둑 밑에 위치 하는 마을인 남포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