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철학]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의 사상 및 비평
- 최초 등록일
- 2003.09.20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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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
목차
1. 시작하면서 1
2. 박제가의 생애 1
3. <북학의> 소개 2
3.1. 시대적 배경 2
3.2. 내용 3
4. <북학의>를 통해 본 박제가의 사상 4
4.1. 문제 의식 - 조선은 가난하며 낙후되었다. 4
4.2. 궁핍의 원인 하늘을 잃고 땅을 잃고 사람을 잃었다. 6
4.3. 해결책1 : 상업과 유통, 소비 강조 사민(四民) 중 10분의 3은 상인(商人)이어야 한다. 7
4.4. 해결책2 : 농법 개량을 통한 농업의 진흥 곡식의 생산은 사람에게 달렸다. 10
4.5. 해결책3 : 선진 기술의 수용 중국을 배우자. 10
4.6. 기타 개혁안 11
5. 박제가의 사상에 대한 비평 12
5.1. 중국을 본받음에 있어 지나친 측면이 있다. 12
5.2. 탈성리학이 아니다. 12
5.3. 화이관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12
5.4. 서양 과학의 본질을 간과한 한계가 있다? 12
6. 맺으면서 12
본문내용
박제가는 1750년(영조 26년) 노론 계열의 서울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으며, 자는 차수(次修)재선(在先)이고, 별호는 정유위항도인(葦港道人)초정(楚亭) 등이나 보통 초정(楚亭)으로 불린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일찍부터 박지원(朴趾源),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九) 등 당대 실학자들과 어울렸다. 특히 박지원과는 사제 관계를 맺어 그의 사상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리고 시에 대한 소양도 높아 1776년(정조 즉위년)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란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내어 중국에 '조선의 시문 사대가(四大家)'로 알려졌다.
1778년(정조 2년)에는 이덕무와 함께 진주사(陳奏使) 행렬을 따라 수행원 자격으로 청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 때 보고 들어 배운 내용 가운데에 조선에서도 행해지면 일상 생활에 도움될 만한 것들을 모아 <북학의>를 저술하면서, '나라의 부강을 위하여는 반드시 청나라의 문물 제도를 배워 생산 기술과 도구를 개선하고 상업을 장려하여 대외 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79년(정조 3년)에는 정조가 규장각 검서관직을 신설하는데, 박제가는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와 함께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었다. 13년간 검서관으로 재직하며 많은 책을 편찬했고, 1792년부터는 부여, 오위장, 영평 등에서 현령으로 일했다. 영평 현령에 있을 당시에는 정조의 농서(農書)를 편찬하라는 교지를 받들어 기존의 <북학의> 내용 가운데 농정(農政)에 관한 내용만을 뽑아 필요한 내용을 보충하여 <진소본(進疏本) 북학의>를 편찬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