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의 생애와 여진 정벌
- 최초 등록일
- 2020.01.31
- 최종 저작일
-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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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대외항쟁 중 하나인 여진정벌과 윤관의 생애를 연관시켜 설명한 레포트입니다. 많은 참조 바랍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윤관의 생애
1. 윤관의 가계
2. 윤관의 정치적 위상
Ⅲ. 여진 정벌의 의미
1. 11세기 동북아의 정세
2. 여진 정벌의 의의
Ⅳ. 맺음말
본문내용
고려 숙종(肅宗)·예종(睿宗) 대에 활약한 윤관(尹瓘, ?~1111)은 문관 출신이면서 무예에 밝아 왕의 측근세력으로 별무반(別武班)을 구성하여 동북면에 구성(九城)을 쌓아 남도 지방의 백성들을 구성에 이주시켜 살게 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는데 이바지하였다. 나중에는 결국 완옌부(完顔部, 완안부)에 9성을 돌려주어 패장의 모함을 받았으나 재상(宰相)·대간(臺諫)들의 탄핵을 물리치며 두둔한 예종의 덕으로 1110년(예종5) 다시 수태보 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 감수국사(守太保 門下侍中 判兵部事 上柱國 監修國史)가 내려졌으나 사의를 표하였다.
지금까지 윤관에 대해서는 그의 군사적 업적을 중심으로만 알려져 있다. 구성의 축조와 위치에 대한 문제라든가, 별무반의 조직 등에 관해서만 알려져 있고, 그가 언제 조정(朝廷)에 나아가게 되었는지, 여진 정벌 이전에 윤관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조정에서 윤관의 정치적 위치는 어떠하였는지 등의 정치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되지도 않고 윤관의 가문으로써 흔히 고려 시대 최고의 문벌 가문이라고 일컬어지는 가문 중 하나인 파평윤씨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고려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윤관이 숙종의 측근세력으로써 근왕 세력을 형성하고 문벌귀족(文閥貴族)과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접하지 못했다면 필자는 아직도 윤관의 군사적인 업적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구성의 위치 비정에 대하여만 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윤관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윤관의 가문은 어떠하였는지, 윤관이 어떻게 조정에 나아가게 됐는지, 윤관이 가지고 있던 조정에서의 정치적 위치, 여진 정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 11세기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박은진. "尹瓘의 生涯와 정치적 位相" VOL.- NO.- (1999),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박기철. "尹瓘의 勢力形成과 女眞征伐" VOL.- NO.- (2008), 충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한국중세사학회, 『21세기에 다시 보는 고려 시대의 역사』, 혜안, 2018.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