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미동비석문화마을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20.02.10
- 최종 저작일
-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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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주요 매력물
2.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 대한 홍보와 이미지 현황
3.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 대한 문제점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부산에는 비석으로 집을 지어서 마을을 형성한 기이한 장소가 있다. 그곳은 바로 서구 아미동에 위치한 ‘비석마을’이다. 이 지역은 1950년대 한국전쟁 피란민이 아미동의 일본인 공동묘지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 내 각지에 흩어져 있었던 화장장을 부산 아미산에 모았다. 그래서 아미산에서 천마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늘 화장장 혼령에게 바치는 제사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그 음식을 까치들이 몰려와 먹었다고 하여 ‘까치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09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던 일본인 공동묘지는 광복 이후에도 방치되었다. 그리고 5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피란민들은 자갈치시장에서 얻은 생선 박스로 엉성한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 몇몇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아미동 묘지터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묘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석 위에 나무판자를 얹고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비석마을에 가면 벽과 바닥에 비석이나 상돌 등이 박힌 집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는 일본 가문 문장 및 묘비명이 아직도 선명한 것이 있다. 몇몇 주민들은 일본인 후손들의 보복이 두려웠던 나머지 묘비명에 시멘트 등을 덧바른 적도 있다고 한다. 겨울에 추위에 대비코자 구들장을 깔기 위하여 묘지의 바닥을 들어내다 보면, 집집마다 유골함이 두세 개씩 나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미동 사람들은 매해 설과 추석에 제사를 지낼 때 마다 일본인 혼령을 달래기 위해 절을 따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스토리로 인해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은 그 동안 관광지로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더디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곳을 방문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미지를 쇄신시키는 일에 있어서도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최근 그러한 역사적인 스토리 자체를 활용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참고 자료
나원정 기자. 묘지 비석, 유골함 널려 있는 '기이한 마을’. 2012.03.16. 중앙일보.
정회영.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주거공간 발생 및 변화과정. 부산대학교. 2015.
황영식. 도심 속 오지마을 경관특성 비교연구 : 부산 태극마을, 비석마을, 안창마을을 대상으로. 경성대학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