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주의 양식건축] 국제주의 양식
- 최초 등록일
- 2003.10.26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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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제주의 양식의 건물들을 나라별 작가별로 다양한 사진과 함께 첨부되어있습니다.
사진이 많아 도움이 되실껍니다.
목차
Ⅰ. 서론
Ⅱ.본론
1.프랑스
2.독일
3.네덜란드
4.영국
5.핀란드
6.미국
Ⅲ.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말은 193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국제현대건축전시회를 조직한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때 이후로 국제주의 양식은, 그것이 실제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부터 1950년대 말까지, 아니 어쩌면 1970년대까지도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주류가 되었다. 전시회를 위해 펴낸 책에는 “이제는 일단의 규율만이 있을 뿐이다. 현대 양식을 하나의 실체로서 통합할 만큼은 확고하지만, 개인적인 해석을 허용하고 자연스런 성장을 촉진할 정도로 유연한 규율이, 첫째, 새로운 건축 개념은(Mass)가 아니라 볼륨(Volume)에 있다. 둘째,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한 대칭성보다는 질서정연한 규칙성이 설계의 중요한 기준이다.”
질서의 필요성은 어떤 의미에서 이 시대 전반에 걸쳐 존재했다. 세계를 뒤흔든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유럽의 내부 질서를 변화시켰다. 그 후 세계는 유럽에서 권위적인 사회주의와 파시즘이 발흥하는 것을 보았고, 잇따른 경제 위기를 겪었으며, 또 한번의 세계대전(1939~1945)을 겪었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생산과 소비, communication의 대중 문화였다.
이 시대 건축가와 도시 계획가들이 새로운 사회의 설계자로서 국제적인 주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여 1928년에는 근대건축국제회의 (CIAM)가 창설되었다. 이 모임은 이런저런 형태로 1959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최초의 선언이 가장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우리의 건축 작업은 오직 현재에서 나온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건축이 다시 그것이 자리한 현실의 지평에 사회경제적인 지평에 놓이기”를 바라며, 특히 “가장 효과적인 생산은 합리화와 표준화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 전통적인 거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것이고, 대신 우리는 개별적인 건물이 딸린 공원을 갖게 될 터였다.
이 운동이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또 이 운동이 왜 그토록 여러 세대 건축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려면, 이 운동을 이끈 몇몇 대표적인 건축가의 작품과 생각을 살펴봐야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