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 통일신라 화엄종과 부석사
- 최초 등록일
- 2003.11.05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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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의상과 화엄사상
1. 통일기 신라사회와 의상의 활동
2. 의상 화엄의 지향
3. 화엄사상의 역사적 의의
Ⅱ. 부석사의 불교사적 위치
Ⅲ. 통일신라의 부석사 연혁
1. 초기 부석사
2. 신라하대의 중창
본문내용
Ⅰ. 의상과 화엄사상
1. 통일기 신라사회와 의상의 활동
의상은 삼국간의 쟁패전이 열기를 더해 가던 진평왕 47년(625)에 태어났다. 진골 귀족의 후예로 생각되는 의상은 스물 남짓한 나이에 출가하여 당시 신라에 소개되었던 섭론(攝論), 지론(地論)등의 교학탐구에 열중하였다. 출가 사찰로 여겨지는 황복사(皇福寺)는 황실과 관계 깊은 중심 사찰이었다. 출가 초반 교학수련에 몰두하던 의상은 현장(玄)이 인도에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고자 그 동안 교유를 가졌던 원효와 함께 26세인 650년에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육로를 통해 중국에 들어가고자 했던 이들의 행로는 고구려 국경에서 좌절되었다. 그 대신 의상과 원효는 고구려 열반의 대가 보덕(普德)에게서 대승교학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를 갖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불교를 배우기 위한 중국을 향한 열망을 접어버리지 않고 37세 때인 661년에 다시 중국 유학길에 나서 해로를 통해 당나라에 건너갔다.
661년에 당나라에 들어간 의상은 그 동안 신라에서 익혔던 지론에 대한 관심의 연장에서 지론을 더욱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나서 662년에 장안(長安) 남방의 종남산(終南山)에서 당대의 교학을 집대성하여 새로이 화엄을 정립해 가던 지엄(智儼)의 문하에 나아가 화엄을 배웠다.
참고 자료
1996, 빛깔있는 책들(부석사편) 대원사
2001, 義相의 思想과 信仰硏究 불교시대사
2002. 韓國思想史學 韓國思想史學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