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3.1 운동과 민족대표 33인
- 최초 등록일
- 2003.11.09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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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3.1 운동의 배경과 전개 과정
2) 3.1 운동의 폭력성/비폭력성 문제
3) 3.1 운동과 민족대표 33인
- 민족대표에 대한 기존 인식과 이에 대한 반박
- 민족 대표 33인의 한계
- 변절한 `민족 대표`
: 최린, 정춘수, 박희도, 이갑성
3. 결론
본문내용
Ⅰ. 서 론
우리는 흔히 1919년(기미년) 3월 1일에 한국에 남아 있던 거의 모든 한국인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친 일을 3.1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에는 교과서에서 유관순과 한용운의 전기 등을 배우면서 한국인들이 평화롭게, 폭력은 쓰지 않고 그저 태극기를 들고 만세만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찰과 헌병이 총칼로 진압했다고 배웠다. 물론 일제가 우리 민족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는 자명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에서 우리가 무력하게 태극기만 흔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또 3.1운동을 이끈 사람들은 이른바 민족 대표 33인으로서, 이들 모두는 한결 같은 지조로 식민 권력에 맞섰으며 법정에서도, 감옥에서도, 체포 과정에서도 두려움 없이 일제에 대항하여 맞섰다고 배워왔다. 이들이 만든 독립선언서가 깨어있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가장 훌륭하며 거의 유일한 독립선언서인 것처럼 배워왔다. 하지만 최근의 몇몇 연구자료를 통해 살펴 본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배워온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대표라는 이들이 법정에서 말을 이랬다 저랬다 바꾸면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였고, 이들 가운데 30~40년대에 총독부에 투항, 친일파가 되지 않은 사람은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한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ꡐ민족대표 33인ꡑ은 그 이름에 걸맞게 독립운동을 이끈 훌륭한 지도자일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법정에서 우매한 군중들이 난리를 일으킬까봐 걱정했다고 증언했으며 그 때문에 다른 곳도 아닌 기생들의 술을 파는 곳인 요릿집인 태화관 에서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발표하였다. 또 시위 군중, 학생들이 태화관으로 찾아와 자신들을 이끌어 줄 것을 권유하자 겁을 먹고 거부하며 순순히 경찰에 끌려갔다. 이게 과연 민족대표다운 모습인지 의문이 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