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의 개혁정치(改革政治)』
- 최초 등록일
- 2020.05.05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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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민왕의 개혁정치(改革政治)』"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고려 말의 정국과 배원정책(排元政策)
1)고려 말의 정국
2)공민왕의 반원정책
3. 북진정책과 쌍성총관부의 탈환
1)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의 탈환
2)동녕부(東寧府)정벌
4.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무신정권시기 원나라의 침입으로 인해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고 또 원나라의 일본원정 등의 이유로 인해 나라가 점점 쇄약해지기에 이른다. 심지어 왕자까지도 어려서 원나라에 보내 교육시켜야 했던 고려에서도 충숙왕 대에 왕자를 원나라에 보내게 된다.
강릉대군(江陵大君)이 바로 그였는데 고려로 돌아와 왕이 된 강릉대군은 반원정책(反元政策)을 펼치게 되는데 그의 옆에는 신돈이라는 승려가 있었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이 바로 원나라의 공주였다.
이번 발표를 통해 공민왕대의 개혁정치에 대해 알아보고 또 고려 말 대외정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고려 말의 정국과 배원정책(排元政策)
1)고려 말의 정국
공민왕은 충숙왕(忠肅王)과 명덕태후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충혜왕(忠惠王)의 동생이었다. 그는 어려서 강릉대군(江陵大君)에 봉해졌고 형인 충혜왕이 왕에 등극하고 2년 뒤 1341년에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했으며 충혜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충목왕(忠穆王) 즉위년에 강릉대군에서 강릉부원대군(江陵府元大君)에 책봉되었다.
고려에서 충목왕이 어린나이에 일찍 죽자 원나라 조정에선 일단 충혜왕의 아들인 충정왕(忠定王)으로 습위(襲位)토록 했다.강릉부원대군은 20세 때인 충정왕 원년 1349년에 원나라에서 위왕(魏王)의 딸 보탑실리공주 즉,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혼인을 맺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성준, 「고려 말의 정국과 원 ․ 명관계」, 『한국사』20권, 국사편찬위원회, 2003.
김종서, 민족문화추진회 편, 『신편 고려사절요』, 신서원, 2004.
장학근, 『고려의 북진정책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